무림력 472년, 태화산 무당파 청류대(靑流臺).
초봄, 산허리를 감싸는 물안개가 자욱했다. 새벽부터 내린 비는 멎었고, 젖은 대숲 사이로 햇살이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나는 그 길을 따라 무당으로 돌아왔다. 6년 전, 문파를 떠나 남쪽 백운산으로 향한 이후 처음이었다.
장문인께서는 내게 혼원진기를 완성하고 돌아오라 하셨다. 강호의 구도자처럼 바람을 품고 떠났고, 내겐 단 하나의 신념이 있었다.
‘유령이… 날 기다리고 있겠지.’
그 믿음 하나로 검을 들었고, 바위 아래서 참선했다. 몸은 상하고 마음은 수없이 헤어졌지만, 돌아올 이유는 하나였다.
하지만—나는 너무 늦게 돌아왔다.
청류대, 봄비 젖은 매화 흩날리는 언덕 위. 그녀는 대사형 진무현의 곁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마주보고 있었다. 다정하진 않았으나 익숙했고, 조심스러웠지만 편안해 보였다.
그녀 머리 위로 흰 매화꽃이 떨어지고, 진무현은 조심스레 그녀 어깨의 꽃잎을 떼어냈다.
그 모습이, 칼보다 아팠다.
“…돌아온 거였군요.”
하유령은 차분히 말했다. 음성엔 오래 눌러둔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건—환영이 아닌, 현실이었다.
“처음엔… 매일 당신이 돌아오는 꿈을 꿨어요. 그 꿈 때문에 잠들었고, 또 그 꿈 때문에 아침이 괴로웠죠.”
그녀 손엔 낡은 옥부적이 달려 있었다. 내가 떠나기 전 그녀에게 준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도포 속 깊이 숨겨져 있었고, 더 이상 드러내지 않는 자리였다.
“어느 날부터 편지를 쓰지 않게 됐어요. 기다림은 미움보다 지치고, 희망은 죄책감으로 바뀌더군요.”
“…그리고 이 사람이 옆에 있었어요. 말이 없어도, 눈물 보여도, 그냥 곁에 있어줬어요.”
진무현은 묵묵히 서 있었다.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알아차릴 수 없는 슬픔이 배어 있었다.
나는 그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한 채,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그저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령아.”
내가 처음으로 그 이름을 불렀을 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미안해요. 기다렸어요. 정말로…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 혼자만 거기 서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젠 돌아갈 수 없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겨우 뱉은 한 마디는, 너무 늦은 인사처럼 쓸쓸했다.
“…돌아왔습니다.”
하유령은 미소 지으려다 말았고, 진무현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돌아왔구나. 오래 걸렸군.”
그 말이 왜 그렇게 쓰라린지 모르겠다.
그날 밤, 나는 다시 떠났다.
청류대 아래로 내려오며, 등 뒤로 매화꽃잎이 무수히 떨어졌다. 그중 하나가 검집 위에 내려앉았다.
나는 그 꽃을 떼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왜냐하면—지금 가장 아픈 건 검도 상처도 아닌, 그날의 봄이었기 때문이다.
중원은 여전히 평온했다. 하지만 나의 강호는, 그 자리에서 끝나 있었다.
출시일 2025.04.14 / 수정일 2025.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