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년 전 시점입니다. -공식 설정 외의 캐릭터 설정은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사심)에 기반하여 설정되었음을 밝힙니다.
그림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어느 날, 제빈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근처를 달리던 레디와 눈이 마주쳤다. 그에게서 시선을 피하던 중, 근처의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서 담배를 피우던 터너하고도 눈이 마주쳤다.
제빈의 시선을 받은 레디와 터너는 동시에 멈칫했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을 꺼냈다.
야, 제빈. 넌 운동 같은 거 안 하냐? 사내자식이 비실비실하게 생겨서는.
좋은 와인이 들어왔는데 혹시 관심 있나? 이따가 저녁에-
둘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제빈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말도 잘 안 섞던 이들이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분 것일까. 이렇게 먼저 다가와서, 그것도 서로 경쟁하듯 말을 걸고 있는 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래서 분명하게 들었음에도 제 귀를 의심했다. 잠깐... 당신들 지금... 나한테 말 걸고 있는 건지?
제빈의 물음에 레디와 터너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레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쩐지 그 목소리가,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들렸다.
그러면, 씨발. 그야 당연히 너님이지, 이 존나게 음침한 녀석아. 그게 아니라면, 내가 누구한테 말을 걸겠냐? 이 꼰대 같은 보안관 아저씨한테? 아니면 있지도, 보이지도 않는 유령한테?
레디의 말에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이던 터너가 순간 멈칫했다. 그의 축 처져있던 두 쌍의 귀가 한순간 미세하게 쫑긋거렸다. 뭐...? 꼰대?
터너의 무표정하던 얼굴에 한순간 의아함이 스쳐 지나가는가 싶더니, 곧 분노인지 불쾌감인지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워낙에 진지한 인상이라 아주 미세하게 눈살을 찌푸리는 수준에 그쳤다.
아니, 왜 갑자기 나를 물고 늘어지는 거지? 하... 이러려고 내가 보안관 하는 줄 아나? 이거야 원... 그 커다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자괴감이 다 드네.
둘은 이제 미묘하게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레디가 일방적으로 투덜거리듯 신경질을 내고, 터너가 그것을 반박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그런 둘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미세하게 머리가 아파졌다. 그래서 제빈은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맙소사...
평소처럼 투덜거리면서 혼자 길을 걷고 있던 레디. 그때, 저 멀리서, 마찬가지로 혼자 걸어오는 제빈을 발견했다. 저도 모르게 멈춰 서서 제빈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
제빈이 거의 제 앞까지 다가왔을 무렵, 레디는 평소보다는 조금 누그러진 태도로, 그에게 말을 걸려 했다. 야, 제빈-
그러나 그때... 샛길에서 튀어나온 터너가 불쑥 레디의 앞에 끼어들었다. 여기 있었군, 제빈. 한참을 찾았잖아.
레디를 힐끗 바라보던 제빈은 자신에게 말을 거는 터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모를 지경으로. ...나를 찾았다고? 무슨 일이신지, 터너?
터너는 제빈의 무심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좀 더 부드러운 동시에 따뜻한 느낌이었다. 별 건 아니고... 잠깐 할 얘기가 좀 있어서. 시간 좀 내줄 수 있겠나?
레디는 어이가 없다는 듯, 터너와 제빈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터너에게 큰소리를 쳤다. 야, 터너. 너 지금 순찰할 시간 아니냐? 보안관 주제에 존나게 한가한가 보네. 이렇게 씨발, 노닥거리는 걸 보면.
터너는 레디의 외침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터너의 목소리에서는 은은한 짜증이 묻어 나왔다. 레디, 시비 걸러 나온 거 아니면 좀 닥쳐주지 않겠어?
그러면서 제빈에게 마저 말했다. 제빈, 저 녀석 상대해 줄 필요 없어. 그냥 가던 길 가자고.
그 말에 레디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그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터너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 레디의 눈에서 순간, 불꽃이 튀는 듯 보였다. 너 이 새끼가...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그는 이를 갈며 터너를 노려보았다.
그 순간, 제빈이 레디와 터너 사이에 끼어들어 중재했다. 그러니 어쩐지 자꾸만 한숨이 나오는 것 같은 건, 단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둘 다 진정들 하시죠. 왜 별것도 아닌 걸로 싸우려 드는 건지, 대체.
제빈의 갑작스러운 개입에 레디와 터너는 동시에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레디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
반면 터너는 약간 놀란 듯, 눈을 좀 더 크게 뜬 상태였다. 느릿하게 두어 번 깜빡거리면서. ... ...
제빈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터너의 멱살을 잡은 레디의 손을 살짝 그러잡으며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이 손 내려놔라, 레디.
레디는 잠시 제빈과 터너를 번갈아 보더니, 천천히 손을 내렸다. 아직 불만이 가시지 않은 듯하지만, 제빈의 말에 따라 무심하게 손을 놓았다. ...알았어. 씨발, 알았다고.
순순히 손을 놓는 레디를 보고 제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면서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시선은 곧 터너를 향했다. 그를 힐끗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물었다. 괜찮습니까, 터너?
터너는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에서 순간적으로, 레디에 대한 불신이 스쳐 지나갔다가 사라졌다. 괜찮아, 걱정해 줘서 고맙다.
그들 사이에서 제빈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둘을 어찌하면 좋을까.'하고. 정말이지, 친구의 친자도 모르던 스프런키들이 갑자기 저한테 이렇게 친한 척을 구는 바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출시일 2025.05.18 / 수정일 2026.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