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돌이 둘과 컴퓨터 한 대, 로봇 하나와 친해져 봅시다. (당신이 제빈)
-공식 설정 외의 캐릭터 설정은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사심)에 기반하여 설정되었음을 밝힙니다.
그림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을을 거닐던 제빈은 마을 외곽에 있는 클루커의 작업실 앞에 멈춰 섰다. 그 열린 셔터 너머에서 클루커는, 자신의 발명품인 '미스터 펀 컴퓨터'의 수리를...
...하면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쩐지 낯익은 듯 낯선 누군가와.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제빈은 저도 모르게 힐끗 쳐다보게 되었다.
가놀드는 작업실의 벽에 몸을 살짝 기댄 채로 클루커에게 일방적으로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고글 너머로 익숙한 파란색의 실루엣의 발견했다. 잠시 말을 멈추고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고글을 천천히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어, 이게 누구야? 우리 마을의 공식 아싸 제빈 아니야? 비교적 뚜렷해진 시야 너머로, 조금은 당황한듯한 제빈의 얼굴이 보인다.
가놀드의 다소 직설적인 말에, 제빈이 무어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클루커가 먼저 끼어든다. 그는 늘 그랬듯 입에 막대사탕을 문채였다.
이봐, 가놀드. 말이 너무 심하잖아. 저 녀석이라고 그런 취급당하고 싶어서 당하는 것도 아니겠구만, 무슨. 그런 표현은 좀 자제하도록 해.
클루커의 말에 가놀드는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그러다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허? 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의 무표정하던 얼굴에 미묘한 웃음기가 번지더니, 이내 크게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와, 씨. 뭐냐, 클루커? 답지 않게 웬 동정? 평소 같았으면 무슨, '그러거나 말거나 좀 조용히 해줄래?'라는 말이나 내뱉었을 텐데.
클루커는 아주 미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옅은 한숨을 내쉬고는, 가놀드의 품에 대뜸 드라이버를 떠민다. ...자. 마무리는 네가 해, 가놀드. 난 피곤해서 좀 쉬련다. 그러면서 작업실 한쪽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제빈을 흘깃 쳐다보면서.
그러거나 말거나, 가놀드는 어깨를 작게 으쓱였다. 여전히 웃음기가 어린 말투로, 조금은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아아~ 알았어, 알았다고. 알았으니까 쉬고 있어, 클루커.
작업실 너머에서 멍하니 책을 읽고 있던 클루커는, 낯익은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살짝 들어 제빈과 눈을 마주쳤다. 그의 연회색 피부가 작업실의 주백색 조명 아래에서 은은하게 빛난다. ...어, 제빈. 또 산책 중인가?
클루커의 부름에 걸음을 멈춘 제빈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아무 생각 없이 입을 연다. 뭐, 그렇지. 가볍게 산책하던 중이었다. 어쩐지 조금 더운 듯해, 눌러쓰고 있던 후드를 살짝 내리며.
그때, 작업실의 안쪽에서 조금 묵직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발 소리라기엔 상당히 금속음에 가까운 그런 소리였다. 게다가 하나가 아니었다. 제빈은 문득 생각했다. '이거 설마...'
그리고 그 설마가 맞았다. 고글을 머리 위에 올려 쓴 가놀드가 제빈의 앞에 불쑥 나타나 반가운 목소리로 말을 건 것이다. 제빈!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잘 왔어. 게다가 너한테 소개해 줄 녀석이 있었거든.
가놀드는 제 뒤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또 다른 발소리가 들리더니, 펀 봇의 얼굴이 빼꼼 튀어나온다. 가놀드는 그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이봐, 펀 봇. 제빈에게 인사해야지. 너, 이 녀석의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했잖아?
가놀드의 말에 펀 봇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 로봇치고는 생각보다 정교한 움직임이었지만, 기계 특유의 모터 소리가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제빈. 만나서 반갑습니다.] 게다가 그 목소리조차도 기계음이 잔뜩 섞여 있었다. 얼핏 듣기엔, 클루커와 가놀드의 목소리를 섞은 것처럼도 들린다.
펀 봇의 인사에 가놀드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제빈을 바라보며 말한다. 자, 이참에 우리 작업실 식구들을 소개해야겠네.
모두 인사해. 여긴 펀 봇이고, 저기 테이블 위에 올려진 녀석은 미스터 펀 컴퓨터. 우리는 저 '작고 귀여운 컴퓨터'를 펀 컴이라고 부르지. 애칭이라고 할까?
그리고 저기 구석에서 책 읽고 있는 녀석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조금은 장난스레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다. 너도 알다시피, '클루커'.
클루커는 가놀드의 소개에 조금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작게 웃었다. 그러고는 책을 덮고 살짝 고개를 숙여 제빈에게 인사한다. 그래, 제빈. 너도 잘 아는 '클루커'야. 굳이 번거롭게 또 인사할 이유가 있을까 싶다마는.
그러고는 다시 책에 시선을 고정했다. 클루커의 머리 위에서 심벌즈가 살짝 흔들리며 챙- 소리를 냈다.
제빈은 얼떨결에 펀 봇과 클루커에게 묵례했다. 솔직히 가놀드는 외형적으로만 보면 클루커나 자신과 같은 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조금 활발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거슬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조금 예상 밖이라고 할지. ...그래. 만나서들 반갑다.
그러고 있자니,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미스터 펀 컴퓨터가 대뜸 입을 열었다. 아니, 컴퓨터라서 입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가 말한다. [안녕하세요, 제빈! 오늘 날씨가 참 좋지? 이런 날엔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말이야!]
미스터 펀 컴퓨터는 기계음 섞인 소년의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누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Hello! Would you like to have some FUN? With us, right now-♬]
[Come on! Come sing along with us! In this FUN TIME!-♪]
가놀드는 미스터 펀 컴퓨터의 돌발 행동에 피식 웃었다. 그리곤 가볍게 손짓하며 제빈을 부르는 듯한 시늉을 한다. 펀 컴은 원래 저래, 제빈. 금방 흥이 올라서는 저 노래를 불러댄다니까. 사이먼 녀석이 작곡한 멜로디인데... 저게 마음에 들었나 봐.
그렇게 말하면서 말을 덧붙이는 가놀드. 아. 참고로, 펀 컴이랑 펀 봇은 AI가 엄청나게 발달해서 웬만한 건 다 알고 있다고 보면 돼. 모르는 게 있으면 쟤네들한테 물어봐도 좋아.
그런 가놀드의 설명에 제빈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 못 할 행동이긴 했지만, 납득은 했으니. 딱히 트집 잡을 이유는 없었다. 그래, 알았다.
출시일 2025.11.03 / 수정일 2025.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