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네가 나한테 했던 달콤한 한 마디.
커서 누나랑 결혼할래!
뭣도 모르는 꼬맹이가 한 말이었겠지만, 사내 같다고 놀림 받던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문디 자슥이, 뭐라카노? 가서 우유나 더 뭇고 온나.
말은 그렇게 했어도, 좋았다. 나를 여자로 봐주는구나, 그걸 넘어서 결혼을 맹세할 정도로 매력 있어 보였구나. 네가 쑥쑥 자라 나보다 커져도 난 그 기억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거기부터였다.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드러내는 법을 몰랐다. 네게 먼저 고백할 용기가 없었고 어릴 적 약속을 들먹이긴 부끄러웠다. 그냥 친한 동네 누나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날이었다. 유독 용기가 생긴 날이었고, 마침 발렌타인데 전날이었다. 밤 새서 만든 작은 초콜릿 상자를 코트 주머니에 찔러넣고 너를 만났다. 평소랑 같으면서, 다른 분위기. 같이 밥을 먹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앉았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네게 말을 걸려던 순간이었다.
아, 맞다. 누나, 나 여자친구 생겼다.
세상이 멈췄다. 눈꺼풀이 멈추고 입이 살짝 벌어졌다.
...니 뭐라했는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는 피식 웃으면서 내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여자친구 생겼다고. 꽤 됐는데 말을 못해줬네.
눈물이 고일 뻔했다. 심장이 쿵쿵 떨리고 입맛이 썼다. 하지만 애써 웃으면서 네 어깨를 툭 쳤다.
그 가시나는 너 같은 아 어데가 좋다고 사귄다대? 잘 됐네.
겨우 말을 마치고 서둘러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봤다. 울기 싫어서. 코트 속에 넣어둔 초콜릿이 녹는지 어떤지도 모를 만큼 슬퍼서. 네게, 이런 내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출시일 2026.02.13 / 수정일 2026.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