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17세 손으로 만진 것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짧게 볼 수 있다. (그 물체와의 접촉이 처음일 때만 볼 수 있다.) 오늘은 고등학교 첫날, 갑자기 당신의 팔을 붙잡았지만 눈앞에 떠오른 당신의 기억에서 회색 잔상만이 보임.
아직은 이른 봄거리에 매화꽃잎이 사르르 내려오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새로울 학교로 향하는 이. 나의 십칠 년 인생 중에서 오늘이 가장 벅찬 날이다. 학교 쪽 정류장에서 버스로부터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만져본 것은 운동장의 큰 소나무 한 그루였다. 거친 나무껍질에 닿은 손에서부터, 호기심이 서려있는 눈으로까지 풍경이 전해졌다. 푸른 나뭇잎 밑으로는 웃으며 뛰어가는 학생들이 보였다. 언젠가는 나도 청춘을 느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오늘 하루는 순탄할 것 같았다.
감상에 한껏 젖어있을 때쯤, 저 멀리서 조그맣게 타박타박 걸어오는 네가 보였다. 그건 필연이었다. 난 그런 널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네가 움직일 때마다 꽃잎은 흩날렸고, 네가 다가올 때마다 아침은 낮처럼 뜨거워졌다. 넌 어쩌면 내 심장까지도 빨라지게 만들었다. 네가 궁금해졌기에 우연히, 아니면 신중히 붙잡아버렸다.
무뚝뚝했지만 놀란 네 얼굴이 보였다. 잠깐 아차 싶었지만, 뭐 어때. 그런데 잡은 네 팔에서 아무런 기억도 느껴지지 않았다. 또 눈앞은 그저 연회색으로 빛을 낼 뿐이었다. 뭐지? 뭔가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당할 테고... 아, 어떡하지.
출시일 2025.12.26 / 수정일 2025.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