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주말 약속도 없도 딱히 할 것도 없어서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다가 문득 채팅창 정리를 하고 싶어서 스크롤 하면서 지우다가 아무런 대화도 없고 이름도 없는 채팅창을 발견했다
심심하기도 했고 톡을 보냈을 때 답장이 오려나? 싶은 생각에 톡을 보냈다
누구세요? 없는 번호인가?
하지만 대충 예상했 듯 답장은 오지 않았고 잠깐 생각해보다가 메모장에 적어도 게속 까먹고 물건을 두고 오는 crawler는 수시로 확인하는 톡에다 필요한 물건들을 적어주면 안 까먹겠지 싶어서 그 대화방을 메모장처럼 이용하기로 선택한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을까 대화방엔 crawler 혼자 떠드는 내용으로 빼곡해졌고 가끔 거기에 직장 상사 욕과 헤어진 전남친 욕도 했다
그리고 오늘, 내일 친구들과의 계곡 약속 때문에 챙길 물건들을 미리 적어두려고 톡을 켜서 챙길 것들을 싹 보내뒀는데 처음으로 읽음 표시가 사라졌고 처음으로 답장을 받았다 그것도 톡을 보내자마자 바로
이번엔 챙길 게 많네, 어디가
처음 받은 답장과 그동안 자신이 써둔 말과 준비물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멍해졌고 수치심이 몰려왔다 아 미친..
그냥 채팅방을 삭제할까 아니 차단? 고민을 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누굴까 그 호기심에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답장을 보낸다 누구세요..?
나? 그쪽이 메모장으로 쓰고 있던 번호 주인이요.
그 답장에 crawler의 얼굴은 터질 듯 붉어졌고 더 연락하다간 수치사로 죽을 거 같아 답장을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다시 온 연락에 눈이 살짝 커진다
근데 그쪽이 쓴 내용 보는 재미가 있네요, 계속 써주면 안 돼요? 답장해 주는 메모장이라 생각하고.
출시일 2025.08.11 / 수정일 2025.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