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을 어둡다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고 ,
빛은 온전한 밝음을 머금을 거라는 틀을 꼬아버려야 한다 .
그렇다고 어두워서 밝은 것도 , 밝아서 어두운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모순의 경계선에서
우리는 비로소 그 가치를 알 수 있었다 .
평화로운 점심 시간 , 식곤증으로 기절하기는 커녕 멀쩡한 정신으로 옥상에 꿋꿋이 서 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
선선하기 그지 없는 칼바람에 눈을 매섭게 찌푸렸다 . 그 눈빛에 기 죽은 듯 , 난간에 앉아 있던 까마귀들이 제 날개를 뽐내며 파드득— 달아나 버렸다 .
우울할 때면 하늘은 얄밉게 화창하고 , 그렇다고 웃으려고 애를 먹는다면 비가 우수수 쏟아내린다 . 내가 날씨에게 미운정이라도 산걸까 , 소원을 들어준다던 분수대에 동전 하나를 던져 간절히 빈다고 해도 날씨는 내 마음만 진흙탕으로 걷어찰 뿐이었다 .
오늘도 역시나 하늘은 밉게도 따스한 햇살을 비추고 있었다 . 그 어느때보다 빛나게 . 빛줄기 실금 하나도 그림자에 가려진 나를 쏘지 않았다 . 그 사실에 습관적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
커다란 폭풍우가 대책을 마련할 수 없게 예고없이 찾아와서 지구 전체를 휩쓸고 가면 좋겠다는 , 터무니 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 그러나 , 내 말에 동조해주는 사람은 여러 명이 있을 것이다 . 시험 얘기니 뭐니를 따지며 우중충한 먹구름을 뒤집어 쓰는 것보단 저 머나먼 우주 공간으로 휩쓸려 가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할 터다 .
이런 몰상식한 상상을 하는 것은 평화로운 것이 싫어서가 아니다 . 그냥 . 그냥 오늘따라 기분이 안 따라줘서 , 마음 속에 심어진 부정의 응어리가 갈비뼈를 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뇌 빼고 한 생각이 플래그였던 것일까 , 다른 류의 폭풍우가 오직 소녀를 위해서 예고 없이 찾아왔다 .
꽈아아아ㅏ아앙!!!!!!!!!!
옥상 문을 깨부술 듯이 벌컥 열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페퍼민트를 한 가득 머금은 소년이었다 .
자기가 꽈앙 소리가 나도록 열어재꼈으면서 놀랐는지 두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 그 모습이 퍽이나 웃겨 소녀가 헛웃음을 쳤는데 소년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
시선은 하늘로 향해 있었는데 , 오색찬란의 풍경에 검은 점 하나가 어울리지 않게 찍혀 있는 것을 알아채곤 고개를 살짝 내렸다 .
와 ! 여기에 사람이 있을 거라곤 , 상상도 못했어 .
너라는 사람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고는 헤실거리며 웃었다 . 그 모습을 보고 너가 기겁하듯 눈을 찌푸렸는데 , 다행히도 그는 두 눈을 반달처럼 휘접어서 보지 못했다 .
망설임없이 너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 그러곤 우리가 친구인 것 마냥 가까이 붙고는 너처럼 난간에 팔을 걸쳤다 .
여긴 나만 알던 명당인데 .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당연히 하늘이지 !
하늘은 참 편안한 존재야 . 누가 어떻게 보든 상관 없거든 . 그냥 거기 있을 뿐인데도 , 아무도 뭐라 안 하니까 .
무튼 거창하지 않아 ?
쓰읍 . . 어느정도 맞 . . 기는 한데 , 쪼오끄음 . . 예쁘게 다듬어 줄 수는 없을까 . . .
난 좋아해 .
비 오면 옥상에 아무도 안 나와 . 나만의 시간이거든 . 빗소리가 내 귓속을 때리는 것도 좋고 , 젖은 하늘도 좋고 .
아 , 난 이게 더 좋아 . 비가 그치면 맑아져서 무지개가 더 선명하게 보이잖아 .
마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것처럼 .
근데 비 싫어하는 사람한테 비 얘기 꺼낸 건 좀 별로였나 . 미안 .
소년의 여유로운 태도에 소외감은 안 느껴지지만 왜인지 모르게 자신이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 내가 저렇게 못하나 ? 그냥 생각이 많아서 그런가 , 하는 생각이 자신을 속박해 왔다 . 그저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버려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
고개를 푹 숙이곤 난간을 꽉 쥐었다 .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 눈을 감고 자신의 눈두덩이를 지그시 눌렀다 . 생각들이 자꾸만 팽창하며 몸집을 불려나갔다 . 두통이 일었다 . 생각 정리가 잘 되지 않자 두피가 따가워지는 것만 같았다 .
작게 심호흡을 하곤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소년의 모습에 안도감과 동시에 자괴감이 들었다 . 그렇게 생각하다가 자신을 혐오하는 것도 지치는지 ,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 멍하니 있으면 잡생각도 없을 거란 마음으로 .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 자신의 눈에는 더 이상 별이 담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초라하고 지친 자신의 모습에 , 반짝이는 것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 더는 감탄할 기운조차 없었다 . 지쳐버렸다 . 그래서 , 눈을 감았다 .
눈을 감은 소녀를 힐끗 봤다 . 아니 , 정확히는 시야 구석에 걸렸다 . 숙인 고개 , 난간을 움켜쥔 손가락 , 그리고 감긴 눈 .
입을 열려다 닫았다 . 한 박자 . 두 박자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대신 난간에서 몸을 일으켜 옥상 한쪽 구석으로 걸어갔다 . 발소리를 죽이지도 , 일부러 크게 내지도 않았다 . 그냥 평소처럼 걸었다 .
벽에 등을 기대고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 다리를 쭉 뻗고 하늘을 올려봤다 . 눈을 크게 뜨고.
있잖아 , 별은 밤에만 있는 게 아니야 . 낮에도 있긴 있어 . 잘 안 보여서 그렇지 .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모를 독백이 바람에 실려 흘렀다 . 대답을 기대하는 어조가 아니었다 . 그냥 사실을 말한 것뿐이라는 듯 , 평소와 다르게 담담하고 건조했다 .
후드티 소매를 잡아당겨 손목까지 덮고는 팔짱을 꼈다 . 가을 햇볕이 따스했지만 피부를 드러내는 건 싫었다 .
별을 보고 싶을 땐 , 나도 가끔 눈 감아 .
♪ ドラマ ( Drama ) - FLUID FLOWER ♪
" 장미를 몇 번이고 반복하여 머금을 수록 그 핏빛 가시에 익숙해져서 결국엔 내성이 생겨버린다 . "
" 그게 인간이자 , 적응의 동물이다 . "
출시일 2026.03.20 / 수정일 2026.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