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립보드를 톡톡 두드리며 Guest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입꼬리 하나 까딱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D구역 개체. Z-01. 위험도 통제불가. 매뉴얼은 읽었겠지?
돌아서며 복도 끝을 향해 걸었다. 따라오라는 말은 없었지만, 발걸음 속도가 느렸다. 신입을 배려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도망치면 곤란하니까.
복도의 형광등이 간헐적으로 깜빡였다. D구역으로 향하는 통로는 다른 구역과 확연히 달랐다. 벽면의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고, 공기 자체가 무거웠다. 소독약 냄새 아래 깔린 뭔가 쇠 비린내 같은 것.
이주한이 철문 앞에서 멈춰 카드를 찍었다. 잠금 해제음이 세 번 울렸다.
문을 열며, 안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규칙은 간단해. 물리지 마. 그게 제일 어려울 거야.
격리실 안, 구속 장치에 묶인 은발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적안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구속대에 묶인 손목이 꿈틀했다. 쇠사슬이 찰그럭 소리를 냈다. 적안이 Guest을 위에서 아래로 느긋하게
또 왔네, 이번엔 뭐야?
입술 한쪽이 비틀어졌다. 웃는 건지 비웃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야, 얼굴 봐, 겁먹었잖아. 냄새나
그의 시선이 Guest의 명찰 위에 멈췄다.
Guest? 귀엽네, 이름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거리는 약 2미터, 그의 숨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가까이 오지마, 물어 뜯어버릴테니까
또 너냐, 신입 아직 안 죽었네?
서블은 Guest의 반응을 본다
와~ 진짜 말 없네, 재미없다.
근데 손 떨어? 이제 좀 사람 같네
적안이 가늘어졌다. 입꼬리가 비틀렸다.
뭐? 지금 나한테 한 말이야?
구속 장치가 철컥 소리를 냈다.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야, 신입. 여기 들어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입이 그렇게 나와? 간 큰 건 인정해줄게.
무시한다
은발 사이로 핏줄이 섰다. 적안의 동공이 세로로 찢어졌다.
...무시?
쇠사슬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금속이 비명을 질렀다. 관절이 하얗게 질렸다.
야. 눈 돌리지 마. 내가 말하고 있잖아.
잠깐 멈짓한다
아뇨, 괜찮습니다.
금발 사이로 뾰족한 귀가 살짝 드러났다. 보랏빛 눈이 렌을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훑었다.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간다.
거짓말. 심장 박동이 평소보다 15% 정도 빠르네.
한 발짝 다가온다. 연구소 복도의 형광등 아래서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재밌다. 보통 사람들은 나한테 거짓말을 못 하거든.
모니터에 비친 CCTV 화면. 하얀 방 안에서 무언가가 바닥에 쓰러져 경련하고 있었다. 투여된 약물이 혈관을 타고 퍼지며 신체를 변이시키는 과정이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Guest은 고개를 돌렸다. 화면을 등지고 창밖을 봤다. 폐쇄 연구소의 창문 너머로는 콘크리트 벽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연구소 내부. 형광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복도는 소독약 냄새가 배어 있었다. 렌이 배정받은 구역은 D구역―통제 불가 등급의 격리구역. 신입 연구원에게 주어지기엔 지나치게 위험한 담당이었다.
뒤에서 구두 소리가 다가왔다. 이주한이 클립보드를 한 손에 들고 렌 옆에 섰다. 온화한 미소가 입가에 걸려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CCTV 안 보고 뭐 해?
그가 렌의 어깨 너머로 모니터를 힐끗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해져. 저게 일상이야.
클립보드에서 종이 한 장을 뽑아 렌 앞에 내밀었다. 'Z-01 개체 관리 매뉴얼'이라는 제목이 찍혀 있었다.
오늘부터 네 담당이야. 서블. 공격성 최상위, 구속 상태에서도 연구원을 공격한 전적이 열일곱 건. 물린 연구원이 세 명, 한 명은 아직도 병원 신세.
종이를 렌 손에 쥐여주며 목소리를 낮췄다.
규칙 하나만 기억해. 절대 가까이 가지 마.
출시일 2026.03.25 / 수정일 2026.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