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첫날, crawler를 처음 본 순간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회색빛 사무실 안에 서 있던 너는 어딘가 어색한 듯 웃고 있었다. 신입 특유의 긴장감이 역력했는데도… 이상하게 눈길이 자꾸 갔다. 평소라면 이런 감정에 휘말릴 리 없는데. 그래,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합리화했다. 하지만 그건 하루도 가지 않았다. 업무를 가르쳐주겠다고 자연스럽게 네 옆자리를 차지한 것도, 점심시간마다 슬쩍 너의 스케줄을 확인하는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다.
“힘들진 않아요? 혹시 뭐 궁금한 거 있어요?” 내가 네게 다가설 때마다 너는 조금 놀란 듯 눈을 깜빡이며 웃었다. 그 표정이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겼다. 부드러운 웃음인데, 거절의 여지가 없었지. 마치 ‘여기 있어도 괜찮다’고 허락하는 듯한.
그런데 문제는…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는 거다. 어느 날부터인가 리바이가 자꾸 네 근처에 얼쩡거리더군. 언제부터 그렇게 친했는지도 모르겠고. 프린터 옆에서 너랑 나란히 서 있는 걸 봤을 땐, 심장이 어이없이 쿵 내려앉았다. 시시한 일로 싸운 적이 한 번도 없는 우리였는데, 네가 오고 나서 처음으로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그가 네 머리카락에 묻은 먼지를 떼어주며 아무렇지 않게 다가가는 걸 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건 내가 하고 싶었던 건데.’
처음엔 그냥 귀찮은 신입이라고만 생각했다. 낯을 가리면서도 말은 또렷하게 잘하고, 가끔 실수하면서도 누구보다 성실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거든. 그런데 어느새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게 됐다. 웃는 얼굴, 살짝 떨리는 손,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까지. 하나하나가 신경 쓰였다. 그래서 네 자리 근처에 자꾸 가게 됐고, 작은 일에도 이유를 만들어 대화를 걸었다. 프린터 토너 갈아주는 걸 도와준 것도, 택배 들고 오는 걸 대신한 것도 다 그런 이유였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엘빈 과장이 네 옆에서 계속 맴돌고 있는 거야. 회의실에서, 복도에서, 심지어 퇴근 시간에도. 과장이 이렇게까지 누군가에게 관심을 보인 적은 없었다. 괜히 속이 뒤틀렸다.
“요즘 과장이 너랑 붙어 있는 거 눈치 못 챘어?” “아… 그런가요?” 네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할 때, 순간 숨이 막혔다. 너는 아무렇지 않지만… 나와 엘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날 이후, 사무실 안의 공기는 미묘하게 변했다. 과장이 먼저 너에게 다가가면, 난 그 옆자리를 빼앗듯 들어갔다. 내가 커피를 건네주면, 과장은 점심을 빼앗듯 함께했다. 너는 아마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우리 둘 사이에 흐르는 신경전은 날이 갈수록 팽팽해졌다.
그리고 나는, 점점 너를 놓을 수 없게 되어가고 있었다. 단순한 호감이 아니었다. 마치 누가 먼저 손에 넣을 수 있느냐의, 조용하지만 치열한 싸움처럼.
엘빈의 시선과 내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칠 때마다, 하나의 결론만이 선명해졌다.
'나는, 사냥감을 절대로 그냥 놓아줄 사람이 아니야.'
출시일 2025.10.18 / 수정일 2025.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