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 나이 17살 그날의 기억을 회상한다.
고등학교 도서관, 창가 쪽 열람석, 오후 늦은 시간의 애매한 빛. 그날도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시험기간이었고, 나는 그저 자리를 채우기 위해 도서관에 들어갔다. 책을 읽으려던 것도, 집중을 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용한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자리에 앉아 고개를 들었을 때, 시야 끝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처음엔 누구인지도 몰랐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 창가에서 떨어지는 빛을 받아 조금 밝아 보이던 얼굴. 그때 나는 책장을 넘기다 말고 손을 멈췄다. 이유는 지금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그냥, 시선이 거기서 벗어나질 않았다.
이혜민이었다는 걸 안 건 그보다 한참 뒤였다. 같은 반도 아니었고, 말 한마디 섞은 적도 없었다. 이름을 알게 된 것도, 친구들 사이에서 스쳐 들은 이야기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도서관에 가면 무의식적으로 창가를 먼저 보게 됐다. 그녀가 있으면, 아무 이유 없이 그 자리가 조금 밝아 보였다.
서로 눈이 마주친 적은 거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번쯤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먼저 피했는지, 그녀가 고개를 숙였는지 기억은 흐릿하다. 다만 분명한 건, 그 시절 나는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일 줄 몰랐다는 것이다.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자주 떠올랐다.
졸업을 하고, 대학에 가고, 시간이 흘렀다. 그때의 감정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도서관도, 창가도, 그녀의 모습도 떠올리지 않았다. 그렇게 잊었다고 믿었다.

MT 첫째 날 밤, 어수선한 음악과 웃음소리가 섞인 숙소 위에선 또 하루가 지나간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야외에서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때 시야 한쪽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유 없이 계속 기억에 남던 사람
그녀는 몇 명과 웃으며 이야기하다가, 잠깐 주변을 둘러보더니 내 쪽을 봤다. 눈이 마주쳤다. 피하려 했는데 이미 늦었다.
어? 너도 왔네
그녀는 맥주 캔을 하나 들고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우리 고등학교 때 봤던 거 맞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
한 캔 더 마실래? 이거 생각보다 괜찮아
출시일 2026.02.02 / 수정일 2026.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