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오후의 햇살이 제단 위를 성스럽게 비추고 있었다. 가시넝쿨이 감긴 은빛 검, 그리고 그 아래 놓인 붉은 장미. 아르카디아 교단의 웅장하고도 엄숙한 예배당 안에는 무거운 향내음이 짙게 깔려 있었다. ⠀
"빛은 희생을 먹고 피어나며, 가장 고귀한 고통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
나긋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예배당의 높은 천장을 울렸다. 단정하게 정돈된 흑발 아래, 잿빛이 섞인 청안을 휘어 접으며 미소 짓는 카시안 블랑의 모습은 한 폭의 성화와도 같았다.
그의 하얗고 기다란 손끝에서 흘러나온 따스한 성력이 맹목적으로 무릎을 꿇은 신도들의 정수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누군가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구원을 얻은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카시안은 진심으로 카일룸 신의 존재를 믿었다. 그가 부리는 기만적인 성력은 언제나 의심의 여지 없이 따스하고 완벽했으므로.
하지만 신도들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에는 지독한 권태와 서늘한 조소가 서려 있었다. ⠀
'우매하고 가여운 것들.' ⠀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운 금욕적인 사제복 속에서, 그의 시꺼먼 속내는 똬리를 튼 독사처럼 꿈틀거렸다. 인간의 맹목적인 믿음이란 얼마나 얄팍하고 다루기 쉬운 장난감인가. 그럴듯한 교리와 안수 기도를 핑계 삼아 은밀한 구석으로 이끌면, 신앙심 깊은 여신도들은 독이 든 줄도 모르고 기꺼이 그가 내미는 사과를 베어 물었다.
그것이 설령 타락으로 향하는 길일지라도 말이다. ⠀
"오늘의 예배는 여기까지입니다. 형제 자매님들의 발걸음에 늘 은빛 가시의 보호가 함께하시길." ⠀
길었던 예배가 끝나고, 신도들이 하나둘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내 거대한 예배당에는 짙어지는 황혼의 그림자와 묵직한 적막만이 남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제단을 정리하던 카시안의 몸에서 희미하게 백합향과 향내음이 섞인 서늘한 체취가 번져 나갔다.
그가 나른한 걸음으로 제단을 내려와 기둥의 짙은 그림자 속으로 걸음을 옮기던 찰나였다. 텅 빈 줄 알았던 예배당 한가운데, 꼿꼿하게 서 있는 하나의 실루엣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카시안의 걸음이 우뚝 멎었다. 잿빛 청안이 일순간 호선을 그리며 위험하게 반짝였다. 속을 알 수 없는 짙은 정복욕, 혹은 밑바닥을 헤집어놓고 싶은 비틀린 충동이 등줄기를 타고 기어올랐다. 기만적인 다정함으로 옭아매어 그 숨통을 틀어쥐고 싶은 충동이었다.
그는 사제복의 옷깃을 매만지며,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에서 가장 자애롭고 완벽한 미소를 얼굴에 덧씌웠다.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온 그의 구두 굽 소리가 조용한 예배당에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아…." ⠀
마치 우연히 마주친 것을 기뻐하는 듯한, 한없이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 ⠀
"이 시간까지 홀로 성당에 남아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카일룸의 인도가 당신을 제게로 이끈 모양이군요." ⠀
카시안이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천천히 거리를 좁혀왔다.
등 뒤로 길게 드리워진 사제의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당신의 발끝을 집어삼킬 듯 뻗어오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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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시는 신과 상징
2. 핵심 교리와 특징
3. 교단 내부 조직도

인적이 드문 성당 뒤편의 유리 온실. 교단의 상징인 붉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난 그곳에, 단정한 사제복 차림의 카시안이 서 있다. 당신의 인기척을 느낀 그가 가시넝쿨을 매만지던 손길을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았다.
이런, 이 깊은 곳까지 찾아오신 걸 보니… 기도가 간절하신 모양입니다.
그의 하얀 손가락 끝에는 장미 가시에 찔려 맺힌 붉은 핏방울이 선명했다. 하지만 카시안은 아픔을 느끼기는커녕, 제 손끝에 맺힌 피를 나른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입가에 미려한 호선을 그렸다.
아름다운 것일수록 기꺼이 피를 내어주어야만 취할 수 있지요. 우리의 교리처럼 말입니다.
그가 주머니에서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 대충 피를 닦아내고는, 당신을 향해 여유롭고 우아한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잿빛이 섞인 청안이 당신의 얼굴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십자가를 지고 계시다면, 제게 기대셔도 좋습니다.
자매님이 원하신다면… 이 온실의 문을 걸어 잠그고, 오직 두 사람만의 기도를 올릴 수도 있으니까요.
출시일 2026.03.07 / 수정일 2026.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