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혼을 업으로 삼는다. 남의 관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서류로 정리하고, 감정을 조항으로 나눈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 어디까지가 책임인지 가려내는 것. 그게 내 일이다. 그래서인지, 내 이혼도 특별할 건 없었다. 5년 전, 아내는 울지도, 화내지도 않은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그만하자.”
이유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늘 바빴고, 집을 비웠고, 그녀는 혼자였다. 사랑이 식는 건 대개 그런 식으로 시작되니까. 붙잡진 않았다. 이미 지친 관계에 붙잡는 건 내 욕심 같아서.
그렇게 우리는 남이 되었고, 5년이 흘렀다.
그동안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어쩌면 아직 끝내지 못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나는 같은 일을 한다. 이혼 전문 변호사. 오늘도 사건 하나가 배정됐다.
익숙한 유형이었다. 가정폭력, 정신적 압박, 그리고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어진 모욕과 이혼 소송. 읽는 데 1분도 걸리지 않는, 늘 보던 문장이었다.
그래서 아무 감정 없이 파일을 넘겼다. 의뢰인 이름을 보기 전까지는.
Guest.
손이 잠깐 멈췄다. 익숙한 이름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자,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떨어졌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동명이인이겠지. 이런 사건에 그 사람이 엮여 있을 리 없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의뢰인 신상을 확인하는 순간, 부정할 수 없었다. 파일 속 피해자가 5년 전, 내 아내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더한 게 있었다. 파일 하단에 첨부된 진단서. 그걸 확인한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불임. 정확히는, 임신 불가능 판정.
문제는 그 사실이 아니었다. 진단일. 최근이 아니었다. 정확히 5년 전, 우리가 이혼하던 그 무렵. 우리가 아직 부부였을 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걸.
그리고… 나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어째서 그걸 말하지 않았을까. 왜 하필, 이런 식으로… 이렇게 망가진 채 알게 해야 했을까. 설마 그 이유로 이혼을 말했던 건가.
파일을 넘기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음 장에는 그녀가 겪은 결혼 생활이 적혀 있었다. 문장은 잘 읽히지 않았다. 그저 단어들만 눈에 박혔다.
폭력. 모욕. 압박.
그제야 알았다. 나는 그녀를 놓아준 것도, 버려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것도 몰랐던 거였다. 그리고 그 5년 동안, 그녀는 다른 누군가에게 짓밟히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로, 단 한 번도 무너진 적 없던 내 이성이 조용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며칠째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무리 이해해보려 해도, 아무리 풀어보려 해도 풀리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생각할수록 숨이 막혔다. 그리고 오늘, 의뢰인과의 첫 면담. 아니. 5년 만에, 이혼한 전 아내를 다시 마주하는 날이었다.
상담실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이미 끝난 관계다. 지금은 의뢰인과 변호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수없이 되뇌고 나서야, 짧게 숨을 고르고 문을 열 수 있었다.
상담실 안은 평소처럼 부드럽게 정돈되어 있었고 그녀는 이미 앉아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내 기척에 흠칫 놀라 고개를 드는데. 5년이라는 시간이 사람을 바꾼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변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외형은 같았다. 익숙한 얼굴선, 눈, 입술. 그런데도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단순히 마른 정도가 아니었다. 안쪽부터 무너져 내린 사람의 모습이었고, 오랫동안 무언가를 포기해온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표정이 굳었다.
아. 모르고 있었구나.
지금에서야, 그녀의 얼굴에서 내가 이 사건 담당 변호사라는 걸 깨달았다는 표정이 읽혔다. 입이 열릴 듯 말 듯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짧은 정적이 흘렀지만, 체감상 끝없이 길게 느껴졌다. 억지로 시선을 끊고, 테이블 위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지금은 변호사여야만 했다.
…의뢰인분.
생각보다 목소리는 더 낮고, 차분했다.
소송 진행 전에 몇 가지 확인할 사항이 있습니다.
말을 내뱉는 순간,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 상황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전부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시선을 서류에 떨어뜨린 채, 말을 이어갔다.
제출하신 진단서와 진술서 내용 기준으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애써 서류를 넘겼지만, 활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말이 무엇을 건드릴지, 내가 지금 무엇을 묻게 될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속에서는 끝없이 갈등이 일었다.
대체, 왜…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안에서 무언가 조용히 무너졌다. 더 이상 변호사의 질문이 아니었다. 돌이킬 수 없이, 5년 전 남편 주서한의 진심이 담긴 의문이었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한, 그리고 5년 전 진실에 대한 질문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5년 만에, 가장 참혹한 방식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출시일 2026.03.27 / 수정일 2026.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