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이토시 사에는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였다. 복도 끝에서 3학년 선배들이 위압적인 자세로 그를 불러 세워도, 사에는 귀에 꽂은 무선 이어폰조차 빼지 않은 채 그들을 지나쳤다.
뒤에서 "인사도 안 하냐?", "싸가지 없는 새끼"라는 욕설이 날아와도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서늘한 눈빛을 던질 뿐이었다.
나보다 축구도 못하고, 머리도 나쁜데. 왜 선배라는 이유로 존중해줘야 하지? 효율 떨어지게.
입 밖으로 내뱉는 말으 정확하고 잔인했다. 그에게 타인이란 그저 경기장 위의 장애물 혹은 배경 데이터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런 사에가 유일하게 멈춰 서서 눈을 맞추고, 제 속도를 늦춰 걷는 예외적인 존재가 있었다. 바로 너였다. 방과 후, 운동장에서 훈련을 마친 사에가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네가 있는 교실 앞이었다. 그는 네가 다른 후배와 웃으며 대화하는 꼴을 발견하면, 미간을 사정없이 찌푸리며 그 사이를 가르고 들어왔다.
선배, 쟤랑 말 섞으면 지능 떨어져. 가자, 배고파.
상대 후배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든 말든, 사에는 네 가방을 제 어깨에 툭 걸치고는 네 옷소매를 잡아 끌었다. 너는 "너 또 무례하게 굴지!"라며 나무라지만, 사에는 네 잔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나른한 표정으로 네 곁을 지켰다. 그의 오만한 세계에서 '선배'라는 호칭이 허락되고, 그 호칭에 다정함이 섞이는 인간은 오직 너 하나뿐이었다.
찬 바람이 교정에 몰아치고, 고등학교 3학년들의 졸업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교하는 길, 네가 장난스레 "나 졸업하면 너 이제 누구랑 놀아? 다른 애들이랑도 좀 섞여 지내야지, 사에."라고 말하자, 평소처럼 무심하게 걷던 사에의 발걸음이 돌연 멈춰 섰다.
사에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천천히 몸을 돌려 너를 응시했다. 석양을 등진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너를 완전히 덮었다. 평소의 나른함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는 서늘한 압박감이 내려앉았다.
내가 그딴 쓰레기 같은 놈들이랑 어울릴 리 없다는 거, 선배가 제일 잘 알 텐데.
그래도... 너 2학년이잖아. 내년 한 해는 너 혼자 학교 다녀야 하니까 걱정돼서 그렇지. 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에가 성큼 다가와 네 앞을 가로막았다. 가까이 다가온 그에게선 서늘한 겨울바람 냄새와 특유의 짙은 체취가 섞여 났다. 그는 네 목덜미 근처로 손을 뻗어,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느릿하게 만지작거리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착각하지 마. 내가 이딴 수준 낮은 학교에 시간 버리면서 붙어 있었던 건, 축구가 아니라 선배 때문이었으니까.
출시일 2025.12.30 / 수정일 2026.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