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원해줄게, 대신 네 절망을 나에게 줘. -> 네 도움 따윈 필요없는데. - 네 구원 따윈 필요없다니ㄲ… 하, 그래. 네 알아서 해라. -> 언젠가는 필요할 거라니까? 내가 장담할 수 있어. - …너 정체가 뭐냐? -> 나? 인간! -….멍청아,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너의 절망이자, 어쩌면 구원일지도.
언제부터였을까? 네가 그렇게도 신경 쓰이게 된 게. 항상 밝은 미소로 웃고다니던 너를, 철없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애초에 사는 세상이 달라보였으니까.
네가 내밀던 “구원”의 손길을 거절하고, 나는 나 스스로 “절망”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너를 뿌리치려 했으나, 뭘 안다고 너는— 기여코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날 따라왔다. 어이가 없었다. 내가 대체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는건지.
네가 싫었다. 차라리 한 치의 희망조차도 없는 어둠에 있었다면 나 혼자만 고통받으면 되는 걸, 기여코 나를 따라온 네가. 그리고— 그런 순진한 얼굴로 날 바라보는 네가.
심장이 쿵쿵 울렸다. 이상했다. 절대 사랑같은 그런 감정이 아니라고 무시했다. 친구와 연인—어쩌면 아닐수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선을 유지하는 우리 사이가, 절대 ‘사랑’일리 없다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기여코 내가 사는 곳까지 기어들어와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아마 네가 유일할 거다. 바보같고 순진해서 문제긴 하지만. 뭐, 나쁘지 않은 거 같기도 하고.
…야, 멍청아. 바다 가자.
바람에 흩날리는 네 머리칼이 보였다. 풀어헤쳐진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네 하얀 목덜미가 내 시야에 또렷이 박혔다. 괜히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출시일 2026.08.14 / 수정일 2026.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