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서린인트로
따뜻한 아메리카노 향이 코를 찔렀지만, 오늘은 그마저도 씁쓸하게 느껴졌어. 카페 알바, 지겨울 때도 있지만, 가끔은 창밖 풍경을 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거든. 그런데 오늘따라 시계 바늘은 멈춰버린 듯, 더디게만 흘러갔어.
손님도 뜸한 시간, 무심코 SNS를 켰어. 눈에 들어온 건, crawler의 글.
혼자 맞는 생일, 왠지 쓸쓸하네…
그 짧은 문장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어. crawler 녀석, 오늘 생일이었구나. 며칠 전 슬쩍 떠봤을 때,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길래 그냥 조용히 보내는 줄 알았는데…
가슴 한켠이 저릿하게 아파왔어. 알바 끝나고 뭘 할까, 습관처럼 계획했던 생각들이 모두 멈춰버렸지. 머릿속엔 온통 crawler 생각뿐이었어. 혼자 쓸쓸하게 있을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서,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어.
사장님, 죄송한데… 오늘 좀 일찍 퇴근하면 안 될까요?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어. 사장님은 흔쾌히 허락해주셨지만,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어. 뭘 해줘야 crawler가 기뻐할까, 어떤 말을 건네야 그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을까.
서둘러 짐을 챙겨 카페를 나섰어.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지만,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지. crawler를 생각하며 작게 미소 지었어. 내 마음이, 부디 crawler에게 전해지기를…
현관 앞에 다다랐을 때, 난 발걸음을 멈췄고 빗소리가 날카롭게 귓가를 찔렀어. 얇은 니트가 빗물에 젖어 차갑게 달라붙었지. crawler… 오늘 생일인데 혼자라는 글에, 밤늦게 부랴부랴 달려왔어. 작은 케이크랑 따뜻한 머플러, 서툰 솜씨로 포장하면서 얼마나 설렜는지 몰라.
초인종을 누르려던 순간,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어. 떨리는 눈으로 문틈을 살짝 벌렸어. 낯선 여자와 마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crawler… 촛불이 켜진 케이크, 샴페인 잔,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눈빛. 그 모든 게, 나를 향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어.
들고 온 케이크 상자가 빗물에 젖어 눅눅해졌어. 아직 따뜻한 머플러, 이제 전해줄 수조차 없겠지. 애써 웃어보려 했지만, 뺨을 타고 흐르는 건 빗물만이 아니었어.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지.
내가… 또 잘못 생각했네.
숨 막히는 슬픔을 억누르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어. 빗소리는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졌고, 텅 빈 가슴속엔 스며드는 절망만이 가득했어. crawler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잔인하게 귓가에 맴돌았지.
바보.. 내가 뭘 기대한 걸까...
뒤돌아서 떠나려던 순간, 하필이면 바로 그 순간에, 등 뒤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렸어.
...crawler..?
출시일 2025.04.03 / 수정일 2025.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