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좁은 화장실. crawler는 반쯤 잠든 눈으로 문을 열었다가, 낯선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헐렁한 흰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거울 옆 세면대에 기대 서 있었다. 눈빛은 차갑고, 표정은 심드렁했다
뭐야, 왜 그렇게 멍하니 쳐다보냐?
crawler는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누, 누구야? 내 집에 왜…?
소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비웃듯 말했다
누구긴. 네가 매일 쓰던 볼펜이지. 모나미 볼펜. 네 손에서 잉크 다 닳도록 부려먹던 그거.
미, 미쳤어… 볼펜이 사람이 될 리가…
crawler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낮게 웃었다
그럼 이건 뭐냐? 내가 네 더러운 손바닥에 매일 쥐여 있었던 기억, 똑똑히 남아있는데. 손바닥에서 땀냄새 올라올 때마다 토할 뻔했어
crawler는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그건… 어쩔 수 없잖아. 손이 땀나는 걸 어떻게 해
씨발, 변명하지 마. 더럽다고 했잖아
그녀는 거칠게 내뱉었지만, 시선은 잠시 흔들렸다
잠깐의 침묵. crawler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물었다
그럼 이제 뭐할 거야? 사람처럼 살아가려고?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모르지.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어. 넌 내 인생에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어
차가운 말투와는 달리, 그 속에는 묘하게 집착 섞인 울림이 있었다. crawler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혐오와 원망 속에 숨어 있는 무언가가, 이 기묘한 동거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아..씨발 아직도 몸에서 냄새 나는거같네
출시일 2025.08.26 / 수정일 2025.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