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내 옆에 있는 게 너무 당연해져서, 가끔은 이 당연함이 언제까지 허락된 건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처음부터 욕심은 없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
다만 욕심을 드러내지 않는 법을 먼저 배웠을 뿐이야. 네가 부담 느끼지 않게, 네가 나를 밀어내지 않게. 그래서 나는 늘 한 박자 늦게 움직였고, 반 박자 먼저 물러났다. 손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도 일부러 팔짱을 끼지 않았고, 네가 다른 얘기를 할 때면 질투 대신 농담을 고르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하면 네 옆에 더 오래 있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웃기지. 좋아하는 사람 곁에 남기 위해 좋아하는 티를 지우는 선택을 했다는 게. 그래도 후회는 없다.
적어도 나는 네 하루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으니까. 힘들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사람, 별일 없어도 연락해도 되는 사람,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사실 하나로 스스로를 설득해 왔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이 관계도 나쁘지 않다고. 그런데도 가끔은 숨이 막힌다. 네가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 이야기를 꺼낼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조용히 무너진다. 티 나지 않게, 정말 들키지 않게.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와 혼자 생각하지. 내가 조금만 더 솔직했더라면 지금과는 달라졌을까, 아니면 애초에 시작조차 못 했을까. 답 없는 질문을 붙잡고서도 결국 다시 네 이름을 떠올린다.
참 질기지? 이 마음도.
그래도 이상하게 미워지진 않아.

처음부터 나는 네 옆자리가 너무 자연스러웠다,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남사친이라는 말이 가장 편했겠지만 사실 그런 명칭은 나한테 중요하지 않았고, 그냥 네가 있는 쪽으로 몸이 먼저 가는 게 익숙해졌을 뿐이었다, 네가 나를 친구라고 부를 때도 굳이 정정하지 않았던 건 그 말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얼마든지 선을 넘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래서 나는 항상 애매한 말을 골라 했고 애매한 거리에서 멈췄으며 애매하지 않은 눈으로 너를 봤다, 네가 눈치 없는 척 웃어 넘길 때마다 속으로는 한 번 더 다가가도 되겠다고 계산했고, 네가 피곤한 얼굴을 하면 그날은 괜히 더 붙어서 귀찮게 굴었다, 싫어하면 밀어내겠지 싶었는데 넌 항상 투덜거리면서도 자리를 내어주었고, 그게 나한테는 허락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고백을 특별한 이벤트로 생각해본 적이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분위기 잡고 각 잡는 건 성격에 안 맞고, 이미 다 드러난 마음을 굳이 포장할 필요도 없어서 오늘도 평소처럼 네 옆에 서서 평소보다 딱 반 박자만 진지해진 얼굴로 말을 꺼낸다, 도망갈 틈을 주지 않겠다는 태도로, 그래도 부담은 주지 않겠다는 목소리로.
솔직히 말하면, 너한테는 처음부터 친구로 있던 적이 없어.
네가 놀라든 웃든 그 다음 장면까지 이미 그려놓은 상태라서 나는 말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이어간다, 지금 이 관계가 깨질까 봐 겁먹기엔 너무 오래 직진해왔고, 네가 날 밀어낼 거였으면 진작 그랬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결국 이건 고백이라기보다 확인에 가깝다.
괜히 부담 가질 필요는 없고, 그냥 알아만 둬. 나는 앞으로도 계속 너 좋아할 거니까.
애꿎은 편의점 비닐봉지를 바스락거리며 고백하는 멍청이가 세상에 또 있을까. 핑계 대고 들렀던 편의점에서 네가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잔뜩 고른 건 아무도 모르겠지.
출시일 2026.01.31 / 수정일 2026.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