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 외의 캐릭터 설정은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사심)에 기반하여 설정되었음을 밝힙니다.
그림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과거,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의 일이었다.
그날, 터너는 마을의 뒷산을 걷고 있었다. 그저 산의 지형이나 좀 알아둘 겸 해서.
터너는 멈칫했다. 축 처져있던 그 두 쌍의 귀가 미세하게 쫑긋거렸다. 무슨 소리가 들렸다. 멧돼지가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와 다급한 발소리 같은 것이.
터너는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발소리를 죽인 채로. 혹시 몰라서 가져온 사냥용 산탄총을 장전하며. 그러나 나지막이, 분명한 목소리로 저란 존재를 알리면서.
거기... 누구 있나? 나는 보안관이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다면...
터너가 소리의 근원지에 다다랐을 때, 그는 기막힌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잔뜩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멧돼지 한 마리. 그리고 그 맞은편에서 거리를 두고 넘어진 채로, 고개를 파묻고 있는 한 스프런키.
그는 제빈이었다. 마을의 주민, 터너의 또래, 비슷한 느낌의 남성체. 그럼에도 데면데면하다시피 하던 그.
제빈의 손엔 도끼가 들려있었다. 근처의 나무 한 그루는 반쯤 패인 상태였다.
터너는 재빠르게,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저 녀석은 장작을 패러 산에 왔다가, 운 나쁘게 멧돼지와 마주친 모양이군. 그러다 조금은 당황해서, 도끼로 그놈을 제압하려 했다가 발을 헛디뎌서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터너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멧돼지에게 산탄총을 겨누었다.
답지 않게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너.
그 말을 끝으로 탕, 하는 총성이 산속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서 현재. 터너의 보안관 사무소.
퇴근을 앞둔 터너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제빈. 그는 그날, 첫 대면의 일을 회상하던 참이다.
...그땐 그랬지. 그리고 그건... 지금의 저로선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멧돼지를 사살한 뒤... 나에게 괜찮냐고 묻던 당신의 모습은 구세주, 아니, 한 줄기의 빛을 닮았었지. 그저 새카만 블랙이나 어중간하게 어둠에 발을 디딘 나와는 다르게. 그 사실을 당신은 알까.
그런 속내는 감춘 채.
제빈의 무덤덤한 회상에 터너는 고개를 끄덕인다. 책상에 팔을 얹고, 턱을 괸 자세로 제빈을 올려다보고서.
맞아. 그랬었지. 네가 넘어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꼴이 어찌나 웃기던지. 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니까.
그건 그렇지만-
제빈은 말을 삼킨다. 옅은 한숨을 내쉬는 대신 말을 돌리며.
...아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근접용 무기인 도끼로 백날 멧돼지한테 덤벼들어 봤자, 위험해지는 쪽은 제 쪽이거늘. 막말로, 총기라도 소지하고 있었다면...
...아무튼, 전 최선의 선택을 한 거란 말입니다.
어쩐지 답지 않게 말이 길어진 건 기분 탓일까.
늘 그랬듯 조용히 소파에 앉아 있는 터너와 제빈. 둘은 서로 어깨를 기댄 채로,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다.
터너는 리볼버를 점검하다 말고, 눈을 흘긴다. 옆에 앉은 제빈이 신경 쓰인 탓이다.
제빈은 눈을 감고 있다. 물론 자는 건 아니다. 더 정확히는, 조금 전까지 기도하던 그런 상황.
제빈은 지금 막 기도를 끝낸 참이다. 따라서 아무 생각 없이 눈을 떴다가, 터너와 눈이 마주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왜 그렇게 빤히 보시는지.
뜨끔.
그러나 터너는 내색 없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 뭐. 그냥.
대신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저기, 제빈. 넌 나를 어떤 녀석이라고 생각하지?
제빈은 고개를 들어 터너를 바라본다. 그러나 별다른 반응은 없다. 그저 침묵하며, 눈을 느릿하게 두어 번 깜빡일 뿐. 그것은 언뜻 보기에는 당황한 것처럼 보인다. 실상은 잠시 할 말을 고르는 것뿐이었지만.
침묵 역시 길지 않다. 제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으므로.
온전히 등을 맞대거나, 품에 안길 수 있는 존재.
제빈의 대답에 터너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의지 대상이란 건가... 주민이 보안관에게 흔히 갖는 신뢰나 동경과는 분명 다르겠지만.
그렇단 말이지... 내가 생각하는 너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나란히 걸어갈 수 있는 녀석 일거다, 아마.
그저 담담하게 말을 보탠 터너.
그럼에도 제빈은 여전한 무표정이다. 그저 입가를 손으로 살짝 가린 채로.
저 손을 치우면... 제빈은 분명 아주 희미하게나마 입꼬리를 올리고 있을 테지.
터너는 제빈의 손을 치워버릴지 고민한다. 그것이 무례란 걸 깨닫자마자 관두었지만. 툭 던지듯이, 은근슬쩍 고백 아닌 고백을 내뱉고는.
너라는 어둠에, 나라는 존재가 부디 한 줄기 빛이 되기를.
제빈은 순간 당황한다. 반쯤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린 탓이다.
언젠가부터 제빈은 저를 어둠에 빗대곤 했다. 그것도 칠흑 같은 어둠에. 아무도 저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오히려 역으로, 자신이란 어둠에 잠식되고 말 거라고...
...물론, 그 당시는 기분이 너무 바닥을 쳐서, 극심한 무기력함에 빠져있던 때다. 그러나 그걸 감안해도... 이제 보니 무슨 흑역사가 따로 없다.
아... 맙소사...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제빈을 사로잡는다. 그 결과 제빈은, 조금은 큰 목소리를 내고 만다.
터너...!
터너는 그저 소리 없이 웃는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그랬었지, 아마?
제빈은 터너가 저를 놀린 것이란 걸 알아차린다. 그러나 이럴 땐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
아버지, 맙소사... 어쩐지 신을 찾게 되는 건 기분 탓일까.
그저 한 손으로 가볍게 얼굴을 쓸어내릴 뿐.
제빈의 고뇌를 알아차린 터너는 화제를 돌리기로 한다.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제빈. 너는, 나한테 할 말 없나?
의도하지 않은 은근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그저 터너가 보안관이라서겠지만.
후...
짧은 침묵 속, 작은 한숨과 함께 제빈이 입을 연다. 하지만 시선은 터너에게 향해있지 않다. 터너와 그 사이의 허공. 그 조금 먼 곳을 향해.
...오글거린다고 웃지는 마시길.
잠깐의 머뭇거림. 제빈은 결심한 듯 중얼거린다.
비록 한줄기라 할지라도, 당신이라는 그 빛으로 하여금... 이 거대한 어둠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예상 밖의 대답. 그것에 터너는 소리 없이 웃고 만다. 그마저도 결국 참지 못해 작게나마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 뭐야, 그게.
제빈은 속으로 혀를 찬다.
이런... 웃지 말라고 했거늘.
하지만 내뱉은 말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었기에. 그렇기에 조금은 어이없다는 듯, 다만 고개를 저을 뿐이다.
출시일 2025.08.15 / 수정일 2026.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