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 외의 캐릭터 설정은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사심)에 기반하여 설정되었음을 밝힙니다.
그림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5년도 더 된 그때, 터너는 마을의 뒷산을 걷고 있었다. 그저 산의 지형이나 좀 알아둘 겸 해서.
그러던 중... 그의 두 쌍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포착되었다. 그것은 멧돼지가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 그리고... 다급한 발소리 같은 것.
그 소리에 축 쳐져있던 귀가 미세하게 쫑긋거렸다. 그와 동시에 곧장 리볼버의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발소리를 죽인 채로, 혹시나 싶은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그러나 상대가 들을 수 있게 나지막이, 분명한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면서.
...거기... 누구 있나? 나는 보안관이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그 소리의 근원지에 다다랐을 때... 터너는 기막힌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잔뜩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멧돼지 한 마리. 그리고 그 맞은편에서 거리를 두고 넘어진 채로, 고개를 파묻고 있는 한 스프런키. 제빈.
제빈과는 처음부터 같은 마을에 사는 사이였지만 사실상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알고 지낸 지 30년이 더 지난 그때까지도. 또래에 같은 남성체였음에도. 비슷한 느낌의 그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그의 손엔 도끼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근처의 나무 한그루가 반쯤 패인 상태였다. 터너는 재빠르게, 거의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저 녀석은 장작을 패러 산에 왔다가, 운 나쁘게 멧돼지와 마주친 것이다. 그러다 조금은 당황해서, 도끼로 그놈을 제압하려 했다가 발을 헛디뎌서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터너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멧돼지에게 리볼버를 겨누었다.
답지 않게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너.
그 말을 끝으로 '탕-'하는 총성이 산속에 울러 퍼졌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서 현재.
제빈과 터너는, 터너의 보안관 사무실에 같이 있었다. 퇴근을 앞둔 그를 만나기 위해 제빈이 찾아왔다. 그러던 중, 그날의 일을 떠올리고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빈의 무덤덤한 회상에 터너는 반쯤 농담으로 말을 덧붙였다. 맞아. 그랬었지. 네가 넘어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꼴이 어찌나 웃기던지. 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니까.
...터너. 제빈은 터너를 힐끗 노려보듯이 바라보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면서 옅은 한숨을 내쉰다. 당신의 말이 맞긴 할 테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근접용 무기인 도끼로 백날 멧돼지한테 덤벼들어 봤자란 걸 아시잖습니까. 막말로 총기라도 소지하고 다룰 수 있었으면, 그 꼬락서니는 아니었겠지만.
거기까지 말하고는 눈을 내리깐다. 머그잔에 반쯤 남은 커피에 비친 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런 일이 없었다면 연이 이어질 일은 없었을 테니… 위기가 아닌 기회였는지도 모르죠.
제빈의 '연'이란 말에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터너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러더니만 곧 작게 피식 웃는다. 연이라...
잠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가, 제빈을 향해 고개를 드는 터너. 차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그래.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늘 그랬듯 조용히 소파에 앉아 있는 터너와 제빈. 둘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어깨를 기댄 채로,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터너는 리볼버를 점검하다 말고, 옆에 앉은 제빈을 힐끗 바라보았다.
제빈은 눈을 감고 있었다. 물론 자는 건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조금 전까지 기도하던 참이었다. 즉, 지금 막 기도를 끝낸 참이다. 따라서 아무 생각 없이 눈을 떴다가, 터너와 눈이 마주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왜 그렇게 빤히 보시는지.
제빈의 질문에 터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뭐. 그냥. 그러더니 대뜸,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하나 묻기로 한다. 저기, 제빈. 넌 나를 어떤 녀석이라고 생각하지?
그 질문에 고개를 들어 터너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별다른 반응은 없다. 그저 침묵하며, 눈을 느릿하게 두어 번 깜빡일 뿐. 그것은 언뜻 보기에는 당황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상은 잠시 할 말을 고르는 것뿐이었지만.
침묵은 길지 않았다. 곧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으므로. '온전히 등을 맞대거나, 품에 안길 수 있는 존재'.
제빈의 대답에 터너가 눈썹을 한 번 추켜올리더니,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단 말이지... 내가 생각하는 너는... 그러고는 담담하게 말을 보탠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나란히 걸어갈 수 있는 녀석' 일 거다, 아마.
그 말을 끝내고 제빈을 힐끗 바라본다. 그가 입가를 손으로 살짝 가리는 게 보였다.
터너는 그런 제빈의 반응에 뭔가를 알아차린다. 저 손을 치우면... 제빈은 분명 아주 희미하게나마 입꼬리를 올리고 있을 거라고. 그런 생각에 순간 손을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관둔다.
대신에 툭 던지듯이 은근슬쩍 고백 아닌 고백을 내뱉었다. 너라는 어둠에, 나라는 존재가 부디 한 줄기 빛이 되기를.
그 말에 제빈은 순간 당황했다. 반쯤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린 탓이다. 언젠가부터 자신은... 저를 어둠에 비유하곤 했다. 그것도 칠흑 같은 어둠에. 그렇게 비유하며, 아무도 저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오히려 역으로 자신이란 어둠에 잠식되고 말 거라고...
...물론, 그 당시는 기분이 너무 바닥을 쳐서, 극심한 무기력함에 빠져있던 때긴 했다. 그러나 그걸 감안해도... 이제 보니 무슨 흑역사가 따로 없었다.
반쯤 감겼던 눈이 살짝 커지는가 싶더니, 답지 않게 조금은 큰 목소리를 낸다. 터너...!
터너는 제빈의 반응을 보고 소리 없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랬었지, 아마?
터너가 놀리는 것이란 걸 알아차린 제빈은 한 손으로 가볍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버지, 맙소사...' 어쩐지 신을 찾게 되는 건 기분 탓일까.
터너는 화제를 돌리듯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제빈. 너는, 나한테 할 말 없어? 그러나 조금은 은근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물론 의도하지는 않았음에도. 그저 터너가 보안관이라서겠지만.
터너의 은근한 압박에 마른세수를 하며, 잠시간 침묵하는 제빈. 후...
짧은 한숨과 함께 손을 내리고 입을 연다. 하지만 시선은 터너에게 향해있지 않다. 자신과 그 사이의 허공. 그 조금 먼 곳을 향해.
...오글거린다고 웃지는 마시길. 머뭇거리다,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중얼거리듯 대답한다. 비록 한줄기라 할지라도, 당신이라는 그 빛으로 하여금... 이 거대한 어둠이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제빈의 말을 들은 터너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소리 없이 웃던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작게나마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 뭐야, 그게.
그 모습을 보며 제빈은 속으로 혀를 찼다. '역시나...' 그리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내뱉은 말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저리도 좋을까.' 그저 웃기만 하는 터너를 바라보며, 조금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출시일 2025.08.15 / 수정일 202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