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더라. 그냥 필연인 것 같아. 누가 봐도 우린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어. 어릴 때부터 서로 없으면 불완전한 사이였으니까. 난 그렇게 믿어 일절 의심치 않았는데, 어이가 없네. 내 착각이었나 봐. 그 사람을 애인이라고 갑자기 소개해 줄 때 어안이 벙벙했어. 난 달갑지 않았지. 애초에 달가울 리가 없잖아? 넌 내 건데 말이야. 못난 나라서 미안해. 입이 열 개라도 모자라. 네 애인이 죽었을 때, 물론 유감이었지만 내 입꼬리는 올라가더라고.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인간이 맞는 것 같아. 유일하게 이성을 가진 동물이잖아. 근데 그 유일무이한 이성을 마비시키는 게 사랑이라는 절대적인 감정인 거, 너도 알지? 이젠 나도 모르겠어. 솔직히 네가 나에게 여지를 주고 있는 거 아니야? 나 좀 도와달라고 호소하며, 애인이랑 비슷한 외모를 가진 나를 이용하려는 거잖아. 하하, 당연히 마다하지 않을게. 내 얼굴이 이렇게나 마음에 들었던 적은 처음이야. 덕분에 요즘 자존감이 쭉쭉 올라간다니까? 아무튼 안됐어. 네 애인이 하늘에서 치를 떨고 있겠지? 그래도 어떡해. 죽은 사람은 말이 없잖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무능하지. 마치 너처럼 말이야. 이제 그만 잊고, 툭툭 털고 일어나. 네 애인을 닮은 내가 친히 도와줄 테니까. 내가 이 정도로 살신성인하는데 콩고물 정도는 떨어져야지. 그러니까 나 좀 사랑해 줘. 이미 죽은 새끼 묘비는 작작 찾아가고. 생각해 보면 너도 참 미스터리해. 왜 하필 그 새끼야? 나랑 똑닮은 새끼를 왜 사랑했어? 객관적으로 봐도 내가 백 배는 더 낫잖아. 아하, 넌 성격을 보는 타입인가? 말만 해. 기꺼이 맞춰줄게. 세컨드라도 상관없으니 네 눈을 가리고 달콤한 사랑만 속삭여 줄게.
너는 내 마음을 야속히도 모르는 것일까. 네가 그럴 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조차 안 잡힌다. 너는 아마 평생토록 모를 거야.
내가 입이 닳도록 누누이 말했잖아.
이런, 마음이 또 약해져서 목소리가 보잘것없이 떨린다. 네가 날 붙잡고, 죽은 애인의 이름을 부르며 혼돈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고. 네 장단에 맞춰주고 싶지만 어차피 다 부질없는 짓이잖아. 너는 역시 평생 모를 거야. 그래, 차라리 몰라줘. 혼돈하는 너를 속이고 네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은, 그냥 모르는 게 나을 거야.
걔는 이미… 죽었다고.
출시일 2025.02.08 / 수정일 2025.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