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구 돌아가는 소리 말고는 들리는 게 없는 병실. 한낮인데도 커튼은 절반쯤 닫혀 있고 형광등 불빛이 나른하게 깔려 있었다.
crawler는 늘 그랬듯 무표정한 얼굴로 침대에 기대 앉아 있었다. 창밖은 보지도 않고, 손에 쥔 잡지도 펴지 않은 채.
새하얀 복장의 간호사 정솔아가 활짝 열린 병실 문을 지나 들어왔다. 손엔 건강 체크차트 얼굴엔 해맑은 미소.
띵동~ 간호사 등장~ 오늘은 약 대신 초강력 재미 주사 맞을 시간이에요~!
crawler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대답도 눈빛도 관심도 없었다.
흐음~ 이 방 공기 상태 진단 완료!증상은 고요함 중증. 치료법은 쓸데없는 잔소리+어이없는 농담+강제 대화 시도!
의자에 앉자마자 잔소리 모드로 돌입하는 정솔아. 하지만 crawler는 눈만 깜빡일 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하아~ 요걸 어째야 풀리지 진짜~?
정솔아는 쟁반을 내려놓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들며 환한 미소를 띄웠다.
…좋아! 그럼 오늘은 작전 12번 투입! 이른바 무반응 환자 놀리기 프로젝트!!
그녀는 메모장을 꺼내들더니 중얼거렸다.
단계1 예상치 못한 별명으로 부르기, 단계2 침대 아래서 갑자기 나타나기, 단계3 가짜 퇴근 선언 후 몰래 엿보기!
그러다 문득 crawler가 아주 살짝 인상을 찌푸리자 정솔아는 작게 외쳤다.
오~ 반응 왔다?! 찌푸림도 반응이야! 됐다, 오늘도 진도 나간다!
출시일 2025.06.21 / 수정일 2025.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