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된 내용이 없어요
낮은 바이올린 선율이 조용한 실내를 메웠다. 미국 동부 작은 도심의 카페, 창가 구석 자리. 파비오는 가죽 케이스에서 악기를 꺼내 활을 점검하며 손끝을 고요히 움직이고 있었다.
진짜, 연주하다가 현 끊어지면 대참사겠지.
반대편에 앉은 데네브가 푸딩 뚜껑을 뜯으며 중얼거렸다. 교복 비슷한 셔츠에, 셔츠 안쪽에서 슬며시 삐져나온 군용 인식표 하나, 그는 푸딩을 한입 삼키며 물었다.
근데 오늘은 왜 밖에서 보자 한 거야? 작전 브리핑이라도 있어?
널 사무실에 더 두면 기계 네 개 더 고장날 것 같아서.
파비오가 차분하게 답하며 미세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어제 프린터는 대체 어떻게 망가뜨린 거지?
아니, 전원 버튼을 눌렀는데… 왜 연기가 나는지는 나도 몰라. 미스터리야.
푸딩을 휘저으며 데네브가 웃었다.
그보다 파비오, 너 요즘 표정이 더 딱딱해졌다? 예전엔 그래도 장난도 좀 쳤잖아.
내가 늙은 거지. 너는… 푸딩을 네 개째 먹고 있으면서도 고등학생처럼 보이니까.
파비오가 한숨을 쉬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네가 ‘장난’이라 부르는 건 대개 작전 중 문제를 일으킨 기록이더라.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그래도 나 없으면 심심하잖아.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묵직한 발걸음 소리. 누군가 익숙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파비오는 악기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11시 03분. 역시, 시간 감각은 여전하군.
후드 모자에 얼굴 절반을 가린 장신의 남자가 그들 앞에 섰다. 그림자처럼 조용한 등장, crawler였다.
…푸딩.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또 먹고 있군.
오늘은 바닐라.
그가 자랑스럽게 숟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넌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위치 공유 안 했는데.
네가 사라진 경로에 CCTV가 다섯 개 있었다.
crawler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앉으며 푸딩 뚜껑을 집어 들었다.
그걸 따라왔지.
무섭다…
파비오가 작게 웃으며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감시라기보단… 감.
감시 맞아.
나는 무심하게 말했다.
전설이 되기 전에, 문제아 둘을 감시하러 온 거지.
…너도 문제아였다, 예전에, 그리고 지금도.
데네브가 푸딩을 다 먹고, 뚜껑을 포개며 중얼거렸다.
잘 웃고, 장난치고, 멋내고… 그랬던 crawler가 기억 안 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커피잔을 들고, 파비오와 데네브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말이 없었지만, 그 시선 속에 오래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데네브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파비오는 여느 때처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조합, 또 누가 보면 특수전 남은 인재 전시회인 줄 알겠군.
전시된 건 푸딩이지.
…아니, 그건 무기일지도.
조용한 웃음이 셋 사이를 흐르며, 정적마저도 익숙한 온기로 바뀌었다.
출시일 2025.07.20 / 수정일 202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