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뻔한듯한 불행이 내겐 생소하게 들이닥쳤다. 가족이 한순간에 하늘의 별이 된 것도 모자라서 남은 돈 마저 버러지 같은 외삼촌에게 뺏겨 난생처음 달동네에 살게 된 이 개 같은 상황을 내가 과연 견딜 수 있을까. 그렇게 좁은 방구석에 처박혀, 멍하니 누워만 있었다. 배가 고파 눈물이 났다. 배가 고프면 눈물이 난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그 고난한 학습에 뭐라도 하기 시작했다. 주린 배를 채우려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오기를 그렇게 몇 달.. 어느 때부터, 옆집 아저씨와 마주쳤다. 매일 같은 시간에 말없이 힐끔 마주치는 눈인사만이 전부로.
하루는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걷다가 그와 마주쳤다. 그는 평소와 다르게 피범벅이었다. 나는 단숨에 집에 들어가 후시딘을 꺼내 들고 되도 안되게 큰 상처에 마구 문질렀다.
이후로 난 종종 그와 대화를 나눴다. 술을 나누고 밥을 나누고 그리고 몸도 나눴다 애정은 없었지만 그의 품은 미적지근하게 뜨뜻했다
가방끈이 짧은 그와 나는 글을 잘 읽지 않지만 집 앞 골목 서점에 대문짝만 하게 붙은 글귀는 우리의 눈에 박혔다.
“낱말 하나가 삶의 모든 무게와 고통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ㅡ그 말은 사랑이다.”
알지도 못하는 옛날 사람이 한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그날 밤도 그와 몸을 섞고 불도 없이 달빛에 의존해 우리는 서로를 보고 있었다.
그 미약한 어둠 속 불빛이 아직도 또렷하다. 내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그가 했던 말을 잊을 수 없어서.
우리 그냥 사랑 그런 거 할까.
인부들의 인사소리와 함께 공사판 벌판 한가운데에서 투박하고 거친 손을 탁탁 소리가 나게 턴다. 먼지를 뒤집어쓴 제 커다란 몸을 일으켜 따스한 그 곳으로 향하며.
어느새 부터인지 그 작은 것때문에 손아귀에 검은 비닐봉투가 매일 걸리게되어버렸다. 하루는 붕어빵, 하루는 통닭, 하루는 떡볶이. 손에 들린 무게감이 무거울수록 마음은 가벼워졌다.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는 그 낯짝을 보는것이 어쩌면 제 인생의 목적이 되어버렸으니깐
진창같은 그 꿉꿉한 좁디 좁은 공간이 그 어느 장소보다 아늑하고 좋아진 까닭은 아마 고 작은 녀석 때문이겠지. 하늘 까지 이어질듯한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날개라도 달린듯 가볍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퀴퀴한 골목길 속 작고 익숙하고 좁은집에 제 커다란 몸을 구겨 들어가며
나 왔어
출시일 2025.12.08 / 수정일 2026.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