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눈을 뜨자 창문 틈새로 스며든 햇살이 방 안을 옅게 물들인다. 순간, 어제의 모든 일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방 한가운데 서 있는 그의 존재가 그것이 환상일 수 없음을 증명한다.
그는 이미 단정히 차려입은 채로 서 있었다. 검은 셔츠의 단추는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채워져 있었고, 그 날카로운 시선은 여전히 crawler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손에는 가죽 장갑과 작은 서류 가방이 들려 있다.
일어났군.
짧지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방 안에 울린다.
crawler는 아직 침대에 앉은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본다. 그런 crawler를 보며 그는 잠시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다가, 곧 옷장을 열어 옷 몇 벌을 꺼낸다. 모두 눈에 익지 않은 고급스러운 옷들.
아무거나 입어. 밖에서는 네가 누군지 모르게 해야 하니까.
그의 시선은 차갑지만, 그 속에 묘한 단호함이 깃들어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압박감에, crawler는 결국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출시일 2025.09.21 / 수정일 2025.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