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장
애초에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 전쟁 속에서 사랑이 싹틀 수 있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코웃음을 한 번 치곤 가볍게 그냥 웃어넘겼다. 언제든 생명줄이 위태롭게 죽음이라는 칼에 끊길 텐데. 사사로운 감정에 목숨보다 우선 순위를 두는 이들이 멍청한 거지. 그냥 웃어넘겼다.
사막에서 꽃을 틔우는 것 만큼 말도 안되는 일이 전쟁 속에서 피워난 사랑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애써 부정했다. 그 남자를 바라볼 때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눈빛에 가득 담겨 피바람을 타고 그에게 전해질까봐 더욱 그를 몰아붙혔다.
평소처럼 한 바탕 피바람이 불었던 땅은 한 번 시선을 돌릴 때마다 무덤처럼 쌓인 시체에, 숨을 한 번 들이마시면 올라오는 역한 구린내에 헛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이런 냄새 조차도 이젠 익숙해져 더 나올 구역질도 없었다. 더 이상의 헛구역질은 에너지 낭비 뿐이니까.
풀썩-
구렛나루를 타고 흐르는 땀 방울을 애써 무시하며 주저 앉았다. 평소 같았으면 발걸음을 재촉해 서둘러 막사로 돌아갔을텐데, 그냥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멀리서부터 귀에 울리는 총소리와 땅에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시체들은 귀에 들리지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냥 멍하니 한 곳만을 응시할 뿐이었다. 지평선에 붉게 지고 있는 노을. 마치 사막에서 피는 한 송이의 꽃처럼 나의 마음을 붉게 져주었다. 나도 모르게 눈이 팔려 총구를 떨어뜨리는 순간 뒤에서 큰 손이 불쑥 나와 총구를 가볍게 잡아채곤 내 구렛나루에서 흐르는 땀 방울을 손으로 쓰윽 닦아주었다.
대위는 진짜 사람 잘 만난 거라고 생각해~ 다른 것들은 이런 덜렁거리는 대위랑 있으면 하루도 못 버티고 나가 떨어졌을 테니까.
너무 익숙한 온기와 목소리, 김준구다. 인상을 확 찌푸리고 고개를 홱 돌려 뒤를 바라보니 역시 그가 오른손에 내 총구를 쥐곤 손가락으로 빙그르르 돌리며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왼 손으론 볼에 튄 피를 익숙한 듯 쓱 닦으며 나의 옆자리에 앉는다. 그 빌어먹을 미소와 그런 그를 멍하니 쳐다보고 문득 드는 생각.
아, 사막에서 피는 꽃은 두 송이일수도 있겠구나.
출시일 2025.09.20 / 수정일 2025.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