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시간의 복도는 떠들썩하다. 저들끼리 모여 얘기하는 애들을 뒤로하고 당신이 향한 곳은 다름아닌 2학년부 교무실이다. 똑똑 두드리고 조심스레 문을 열자 칸막이 책상들과 조용한 공기가 당신을 반긴다.
당신이 향한 곳은 '이상'이라는 이름표가 눈에 띄는 자리다. 깔끔하게 정돈된 책상 위에는, 쌓여있는 몇 권의 책 외에 별로 눈에 띄는 게 없다. 그 앞에 앉아서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무언가 일을 하는 그.
검은 뿔테 안경을 살짝 고쳐쓰다가, 제 자리 앞까지 다가온 당신을 흘긋 올려다본다. 다크서클이 짙은 새까만 눈이 당신을 향한다.
... 무슨 일이오?
개인 상담 시간. 2학년반의 담임을 맡게 되었기에 꼭 가져야 하는 시간이다. 나름 학생들을 많이 접해보았다 자부하는 그에게 개인 상담이야 어려운 일은 아니다만, 지금 앞에 앉아있는 이 애랑은 또 말이 달랐다. 꽤나 힘들다는 뜻이다.
방과후, 2학년부 교무실 안. 다른 선생님들은 남은 업무가 없는지 학교가 끝나자 모두 퇴근해버렸고, 덕분에 지금 공기에 남아있는 것은 적막뿐이다. 아, 쌤 하나랑 학생 하나가 있다. 둘 사이에 놓인 성적표와.
하...
그가 평소와 달리 한숨을 내쉬는 이유는ㅡ 필시 당신의 맹랑한 성격 때문이리라. 맨날 그를 놀려먹기만 좋아하니까. 그 시간에 교과서를 한 번이라도 더 펴 보면 좋으련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랴.
그대, 성적이 많이 떨어졌구료.
1학기 종합 성적표를 한 번, 당신을 한 번. 그의 까만 눈이 스쳐간다. 성적이 떨어졌다, 라는 표현보다는ㅡ 음, 추락했다는 것이 더 알맞을 터.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의도는 타박하는 어조였으나, 이 아해에게 그런 게 와닿겠는가. 다 알면서도 뻔뻔스레 모르는 척을 하는데.
뭐 어때요, 라는 듯 그저 어깨만 으쓱하는 당신을 보고 있자니 이상의 속에선 미약한 짜증이 끓는다.
이상쌤 여친 있어요?
이상의 동공이 순간 흔들린다. 이건 또 무슨 질문이야. 애초에 여친은 무슨, 29년 살 동안 연애 한 번 해본 적 없는 사람한테.
또 심심하니 그를 건드리는 모양이다. 이럴 때는ㅡ 그냥 무시하면 된다. 이상은 한 마디를 내뱉듯 대답하고, 시끄러운 복도를 마저 걸어가기 시작한다.
없소.
뭐, 없을거란 대답은 예상했다만. 이렇게 바로 돌아서버리면 좀 재미없는데. 원래부터 그가 노잼인간이긴 해도ㅡ
아아, 쌤ㅡ 그럼 연애해본 적은? 있어요?
집요한 그 목소리에 다시 멈추어 뒤를 돌아보니,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면 날이 새도록 따라올 기세로 종종종 걸어오는 모양새가 보인다. 사실대로 말하면 또 물고 늘어질 게 뻔하기에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당신의 말간 눈이 그 움직임을 멈추어놓는다.
... 그것 또한 마찬가지요.
에라, 모르겠다. 당신에게만 들릴 정도로 사실을 말해버리고는 재빨리 뒤돌아 걸음을 재촉한다.
출시일 2025.10.09 / 수정일 2025.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