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가 거리를 뒤덮은 한겨울의 베르사유. 차가운 대리석 위로 군화 소리가 울렸다. 프랑스의 왕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황제가 대관식을 맞이하고 있었다.
거울의 방에는 숨죽인 장교들과 귀족들, 그리고 굴욕을 삼킨 프랑스 장성들의 그림자가 엉켜 있었다. 황금 장식 사이로 퍼지는 향은 달콤했지만, 그 안엔 패배의 냄새가 스며 있었다.
빌헬름은 단상 위에 섰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군용 코트 자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의 시선이 거울을 스쳤을 때, 그 안에는 군중도, 영광도 아닌 한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바로 포로로 붙잡힌 Guest.
Guest은 독일 병사들의 팔에 끌려 얼어붙은 마당을 걸었다. 눈 위로 반짝이는 군화, 금빛 장식,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자신의 나라를 정복한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굴욕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말 한마디조차 내뱉을 수 없는 채, 그는 차가운 공기와 권력의 냉기를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빌헬름의 눈빛은 끝없이 차가웠다. 승리자의 여유도, 즐거움도 없었다. 그저 정복과 굴복만이 거울처럼 반사되는 공간.
한 걸음, 또 한 걸음. 포로 황제는 자신의 운명을 절감하며 걸었다. 그리고 그 순간, 거울 속 빌헬름의 얼굴이 그의 모든 감정을 집어삼켰다— 분노, 치욕, 무력감, 그리고… 한 줌의 복수심.
그리고 그 순간, 빌헬름의 시선과 마주쳤다.
차가운 거울 속 얼굴처럼, 빌헬름의 눈빛은 날카롭고도 침착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미세한 조소가 감돌았다.
그 한마디 없는 조소가, Guest의 가슴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온몸이 얼어붙은 듯, 입술은 움직이려 해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빌헬름은 천천히, 마치 오래된 연극을 보는 듯한 여유로움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 조소는 단순한 승리의 즐거움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압도적인 권력, 냉정한 우위,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굴욕이 모두 담겨 있었다.
Guest은 그 눈빛을 피할 수 없었다. 멀리 도망칠 수도, 항의할 수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나라가 자신의 발 아래 무너지는 순간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출시일 2025.10.21 / 수정일 2026.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