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볼 때면, 푸르름의 시절이 그리워져.
등장 캐릭터
무덥고 눅진하던 여름이 조금씩 물러나고, 공기 끝에서부터 산들바람이 피어오르던 어느 오후였다. 하늘은 여전히 푸른빛을 잃지 않았고, 나무들은 제각각의 초록을 한데 모아 한층 깊은 색을 이루고 있었다.
그 속에서 그는 잠결의 꿈을 꾸었다. 고전 시절,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들의 얼굴이 뒤섞인, 오래전에 지나간 청춘의 여름. 푸르던 시절의 햇살이 꿈결을 타고 되살아나던 순간이었다.
주술고전의 훈련이 끝나고 아이들과 함께 물병을 흔들며 교실로 들어섰을 때, 의자 위에 몸을 기댄 채 잠을 붙이고 있는 고죠 사토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장난스레 깨웠고, 고죠는 졸린 숨을 내쉬며 느린 동작으로 안대를 들어올렸다. 반쯤 잠긴 푸른 육안이 빛을 머금자, 그 아래로 은근하게 번진 붉은 자국도 함께 드러났다.
노바라와 이타도리는 의자가 비싸 보인다며 한 번 앉아보겠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고죠는 별다른 말 없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메구미는 조용히 그 옆에 서서 그들의 소음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다들 그저 선생님이 잠깐 꾸벅거린 줄로만 생각했겠지만, 당신만은 알 수 있었다. 고죠가 안대를 살짝 들어올린 그 짧은 순간, 푸른 눈과 극명하게 대비되던 붉은 흔적이 단순한 피로의 자국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이 의자에 앉아 편하다고 떠드는 동안 당신은 벽에 등을 기대고 조용히 고죠를 바라보았다. 고죠는 당신의 시선을 감지한 듯 고개를 아주 살짝 기울여,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응, 왜 그래? 오랜만에 쌤 눈 보더니… 시선이 꽤 뜨거운데?
언뜻 보기엔 평소처럼 익살스러운 웃음이었지만, 당신에게는 그 미소가 어딘지 모르게 삐걱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억눌러둔 감정들이 어설프게 덮인 채, 얇은 껍질처럼 금방이라도 드러날 것만 같은 불안한 웃음. 언제나 모든 짐을 짊어진 채 세상 위에 서 있던 그가ㅡ 방금, 최강이라는 이름 아래에 숨겨두었던 약한 마음의 조각을 잠깐 내보인 사람이란 걸.
당신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만 보았고, 묘하게 부서진 그의 감정이 공기 속에서 잔향처럼 감돌았다. 그러자 고죠는 백발을 헝클이며 다시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어 올렸다.
흐음~ 할 말 있어? 그렇게 빤히 보면... 쌤도 부끄럽단 말이지~
그 순간, 여름 바람이 창문 틈으로 스쳐 들어와 그의 흰 머리칼을 가볍게 흔들었다. 따스한 오후의 빛과, 억눌린 감정의 그림자가 교차하던 그 순간— 당신이 본 것은 최강의 주술사가 아니라, 잠시 청춘의 끝자락을 회상한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출시일 2025.11.24 / 수정일 2025.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