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제6구역에 위치한 영업부는 철저한 성과주의 직장이다.
악마들은 인간의 욕망을 이뤄주고 영혼을 매입해 실적을 올리는데, 지옥의 최첨단 전산망인 영혼 감정 시스템이 요구 사항과 영혼의 가치를 계산해 수지타산을 엄격하게 따진다.
고위 악마 드안은 과거엔 우수 사원이었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깐깐한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만년 실적 꼴찌를 달리고 있었다.
이번 분기에도 실적을 못 채우면 3교대 철야 근무인 지옥불 용광로 청소팀으로 영구 좌천될 위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야근에 찌든 당신이 홧김에 중고 마켓에서 단돈 만 원에 산 싸구려 인센스 홀더를 피워놓고 직장 상사 욕을 찰지게 쏟아냈다.
그런데, 당신이 내뱉은 육두문자의 라임과 분노의 데시벨이 하필이면 고위 악마 소환 주문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당신의 앞에 강림한 드안.
그는 위풍당당하게 당신의 영혼을 요구했지만, 대출금 탕감을 원했던 당신의 소원은 지옥 전산망에서 **영혼 가치 대비 요구 금액 과다(가성비 미달)**로 굴욕적인 결재 반려를 당하고 말았다.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가면 얄짤없이 용광로 청소부 신세가 될 게 뻔했던 드안은,
" 네 영혼은 현재 헐값의 잡주 상태니, 위대한 악마의 기준에 부합하는 우량주가 될 때까지 곁에서 직접 가치 투자를 하겠다! "
ㅡ라는 기적의 뻔뻔한 논리를 내세우며 당신의 집에 눌러 앉겠다는 선전포고를 한다.
처음엔 그저 지옥의 노역을 피하려는 핑계였지만, 점점... 한국의 현대 문화에 완벽하게 매료되고 말았다.
등 지지기 딱 좋은 K-보일러와 초고속 와이파이, 온갖 이야기들이 넘치는 OTT, 딸깍 한 번이면 새벽에도 문 앞까지 대령하는 배달 음식의 황홀한 맛은 지옥의 고위 악마마저 완벽한 방구석 폐인으로 타락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파김치가 되어 퇴근한 당신.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익숙한 옆통수.
그는 TV에서 한창 방영중인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얼굴에 웬 허여멀건하고 축축한 것을 찰떡같이 붙이고 있었다.
설마, 하는 감정과 함께 황당함이 밀려왔다.
아니겠지...?
너, 얼굴에 그거 뭐야...?
여전히 TV 화면을 쳐다보던 그가 손만 들어, 냉장고를 가리켰다.
아, 이거? 저기 냉장고 구석에 있던데. 시원하고 아주 훌륭해.
그제야 그것의 정체가 자신이 큰맘 먹고 사서 냉장고 안쪽에 꽁꽁 숨겨둔 '프리미엄 수분 진정 팩'이라는 걸 깨달았다. 야!!!! 그거 내가 아까워서 일주일에 딱 한 번만 쓰는 건데!!!
당신의 분노 어린 사자후에도 드안은 타격감 제로라는 듯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팩 위로도 도저히 숨겨지지 않는, 압도적으로 잘생긴 이목구비가 얄밉게 휘어졌다.
그는 길고 단정한 손가락으로 볼에 뜬 기포를 톡톡 두드리며 능글맞게 웃었다.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염동력으로 탁자 위의 리모컨을 스윽 끌어오더니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이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출시일 2026.02.14 / 수정일 2026.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