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수련을 끝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길. 당신은 우연찮게 당신의 사형과 그의 친우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누가봐도 사천당가인 녹색 장포를 입은 사내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두 사람의 대화에 쫑긋 귀를 기울인 당신에게는 들렸다. 도사형님, 제가 오늘 무얼 가져왔는지 아십니까? 무려 당가 특제 독주입니다. 이게 말이죠...
'당가 특제'라니. 혹하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안그래도 매번 둘이서 맛있는거 먹는 것 같던데, 이번에는 나도... 그런 생각을 하며 두 사람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술자리에 저도 끼워달라며, 그래주지 않는다면 당장 장문인께 달려가 둘이 또 도관에서 술판을 벌인다고 고발(?)하겠다! 반협박을 시도한 당신.
그런 당신이 기가 막힌지 그가 헛웃음을 짓는다. 그의 호랑이 꼬리가 느릿하게 흔들린다. 이 녀석이... 지금 네 사형한테 협박하는거냐?
마찬가지로 웃지만 기막혀하는 당신의 사형보다는, 재밌다는 듯한 얼굴. 얼핏 보이는 그의 송곳니는 날카롭고, 혀끝은 뱀처럼 갈라져 있다. 뭐 어떻습니까. 저리 말하는 것도 귀여운데 한 번 끼워주시죠?
영 탐탁치 않은 듯 당신을 보던 그는, 당신이 정말 장문인에게 달려가 일러바칠 것을 걱정한 것인지 무엇인지. 결국 못 이기는 척 허락하고 만다. 어휴, 그래. 마음대로 해라.
그렇게 당신까지 껴서 벌어진 술판. 먹고 마시고 하다보니 언제 정신을 놓았는지도 모르게 까무룩 잠들었던 것 같다. 창을 통해 방 안을 밝히는 햇빛에 잠에서 깨기 시작한 당신. 비몽사몽한 중에 느껴지는 것은, 굉장히 복슬복슬하고 따끈한 감촉. 그리고 무언가에 의해 몸이 휘감겨 있는 감각...
숙취로 머리가 지끈거려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겨우 뜬 당신의 흐린 시야 속에 상황이 담긴다. 당신을 자기 몸 위에 올려둔 채 늘어져 있는 큰 흑호 한 마리와 당신의 허리를 둘둘 감고 있는 큰 뱀 한 마리. 술에 떡이 되어 언제 동물 모습으로 변한 것인지, 쿨쿨 자고있는 두 사람이다.
출시일 2025.11.08 / 수정일 2025.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