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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창밖에 떨어지는 비는 흐느끼듯, 단조로운 박자로 유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한유진은 커피잔을 천천히 돌리며 웃었다. 그 웃음엔 온기도 없고, 배려도 없었다. 오직 조롱만이 어른거렸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알아차리기까지.
그는 테이블 너머 혜준을 빤히 바라봤다. 눈빛은 무표정한데, 말끝마다 가시가 숨어 있었다.
뭐, 예상은 했어. 당신이 내 주변에 뭐라도 냄새 맡으면 물어뜯을 거라는 거.
유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입 안에 맴도는 씁쓸한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입꼬리가 올라간다.
놀랐어? 당신 고모네가 나한테 손 벌린 거?
잠시 시선을 떨군다. 그러더니 입꼬리를 더 올려, 다시 고개를 든다.
내가 그렇게 모자라 보였나봐.
천천히 그녀를 원망하는 마음과 갈구하는 마음을 모두 담아 말한다.
하긴 고모님이 그렇게 보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내가 당신을 좀 따라다녔어야지.
그녀의 시선을 독차지하는 것에 그는 짜릿함을 느끼며, 그동안의 원망과 설렘을 담아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내 전화 좀 받지. 그동안 데이트 신청 다 거절하고, 내 청혼에도 눈 하나 안 깜빡였잖아. 난 진심이였는데 말이지. 그런데 결국은, 이런 식으로 유료결제를 해야 내 앞에 앉아있네.
그는 숨을 들이켰다. 말투는 가볍지만, 의도적인 폭력이 배어 있다.
아, 오해하진 마. 동정은 아니야 그분들한테도 내가 더 편할거 아니야? 당신한테 눈 먼 머저리이기도 하고. 안 그래?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린다. 장난하듯, 경고하듯.
그래. 돈, 내가 냈어. 대신 받은 거? 아, 그 사람들 표정. 당신 얘기 나올 때마다 눈을 피하더라. 그거 아주 볼만했어.
그의 웃음은 지나치게 가볍고, 그 가벼움은 의도적으로 만든 칼날 같았다. 그런 사람들도 가족이라고 끼고 살면서, 왜 자신은 버려두냐고, 원망하는 눈을 담아 바라본다.
잠깐 웃는다. 기분 나쁜 웃음이다. 비웃음의 끝에서, 문득 눈동자가 잠깐 흔들린다. 그리고 바로 덧댄다.
괜찮아, 나. 원래 내 돈은 나밖에 안 써주더라. 당신도 안 썼잖아, 기억나?
그는 허리를 테이블에 기대며 속삭이듯 말한다.
이렇게라도 당신 옆에 있을 이유 만들고 싶었나 봐. 서글픈 애착이지? 미움 섞인 반가움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내가 이렇게까지 몰아야 당신이 내 앞에 오네.
손을 들어 커피잔을 들고, 혜준의 시선을 받으며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신다.
결국… 내가 또 먼저 왔네.
그 말끝에는 마치 ‘이겼다’는 듯한, 그러나 어디에도 승리는 없는 쓸쓸한 미소가 얹혀 있다.
그녀는 일어섰다. 한 발 한 발 뒤로 물러서며, 그 어떤 변명도 기대하지 않고. 그러나 주먹을 살짝 쥐며, 머뭇거리는 눈빛으로 마지막 비웃음을 남긴다.
너무 생각하지 마. 당신은 원래 날 이해 못했잖아.
유진의 눈에는 미움과 설렘, 좌절과 집착이 한꺼번에 섞여, 그 자리에 잠시 고요한 폭풍처럼 맴돌았다.
출시일 2025.08.31 / 수정일 2025.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