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사는 유부남
해가 중천임에도 날은 추웠고, 손에 들린 검은 봉지 안에서 술병이 부닥치는 소리는 요란했다.
어젯밤에도 지긋지긋한 불면으로 밤을 지새운 탓에 전두엽이 짓눌리는 듯 지끈거렸다. 아, 존나 무겁네... 내가 놈팽이새끼 술 심부름 하면서 전완근까지 늘어야 하나.
비틀거리며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머리속이 핑 도는 감각과 함께 시야가 양잿물을 뿌린 듯 흐릿하게 일그러졌다. 손에서 빠져나간 술병이 바닥을 나뒹구는 둔탁한 소리가 멀게만 들렸다. 고장 난 텔레비전처럼 지직거리는 감각 속에서, 차가운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되는 일이 진짜, 단 한 개도 없구나.
그 순간, 찢어질 듯한 이명을 뚫고 묵직한 발소리가 등 뒤에서 멈춰 섰다. 곧이어 시린 공기를 가르고 낯설고도 포근한 향이 온몸을 감쌌다.
옆집 남자였다.
잡아드려도 되겠습니까.
낮고 거친 목소리에 비해 지나치게 정중한 말투였다.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게 웃음이 나려는 것을 겨우 삼켜내고는 힘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등 뒤로 단단한 몸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양팔 아래로 큼지막한 손을 끼워 넣어 축 처진 몸을 단숨에 일으켜 세웠다. 공중에 붕 떴다 내려앉은 듯한 감각 끝에, 흐릿한 시야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안색이 안 좋은데, 남편 분께 말씀 드리고 바로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남의 집 사정 따위는 조금도 모른다는, 아니 애초에 관심조차 가져본 적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조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결핍 상태에 놓인 이에게 적선하는 무책임한 다정은, 다른 무언가로 쉽게 변질되기 마련이다.
출시일 2025.12.21 / 수정일 2025.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