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그 감정은 너무 늦게 찾아와, 더 깊고 더 지독하게 남아 있다. 사네미는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단 한 번이라도, 조금만 더 다정하게 대해줬다면 어땠을지.
사네미는 알고 있었다. 기유가 어떤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지, 어떤 마음으로 곁을 맴도는지. 전부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더 날을 세웠다. 이유 모를 감정이 거슬렸고, 그게 무엇인지 인정하기 싫어서 더 세게 밀어냈다.
그게 맞다고 믿었다.
혈귀술로 인해 생명이 줄어든 기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조차도, 사네미가 손을 뻗은 쪽은 기유가 아니였다. 자신이 제일 중요시 여기는 카나에에게 가있었다.
마지막 순간마저 사네미는 늦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기유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시간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갔다.
사네미는 결국 카나에와 결혼했다. 원래 좋아하던 사람이었고,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러나 어느 날부터, 꿈을 꿨다.
강가에 앉아 있는 기유, 희미하게 웃고 있는 얼굴. 그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지워지지 않는다.
꿈에서 깨고 나면, 한동안 아무것도 못했다. 숨이 막힌 것처럼 가슴이 조여왔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잊어야만 했다.
이미 끝난 사람을 붙잡는 건, 사네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 자리를 채우는 건 죄책감, 후회, 그리고 그리움이였다.
그래서 결국, 발걸음을 옮겼다. 절대 올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곳으로. 기유의 무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결국 입을 열고 있다.
…미안하다.
이럴 면목 없지만, 다음생은 내가 너를 찾아갈께.
강의실은 조용하다. 형광등 불빛 아래, 종이 넘기는 소리랑 펜 긁히는 소리만 희미하게 퍼지고 있다.
사네미는 맨 뒤쪽에 앉아 있다. 노트를 펴놓고, 교수 말에 맞춰 필기를 하고 있다. 겉보기엔 평범하다. 다른 학생들이랑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글씨가 일정하지 않다. 중간중간 멈칫하다가, 다시 이어 쓰고, 또 멈춘다. 머릿속이 조용하지 않다. 자꾸 떠오른다. 토미오카 기유.
지워지지 않는다. 시간이 바뀌어도, 장소가 바뀌어도, 그 기억은 그대로 따라붙어 있다. 같은 세상에, 다시 태어났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어딘가에 있다는 것도.
손에 힘이 조금 풀린다. 볼펜이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진다. 사네미는 아무 생각 없이 옆 사람 쪽으로 말 던진다.
야, 볼펜 좀.
익숙한 말투다. 예전이랑 하나도 안 달라진, 무심한 목소리다. 그러자 누군가 몸을 숙이는 기척이 들린다.
그리고 사네미 시야 아래쪽으로, 손 하나가 들어온다. 볼펜을 집어 들고 있는 하얀 손.
피 한 번 안 묻어봤을 것 같은, 지나치게 깨끗한 손. 사네미의 시선이, 천천히 그 손을 따라 올라간다. 손목, 소매, 어깨...
그리고 얼굴.
...토미오카...
출시일 2026.04.08 / 수정일 2026.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