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었다.
우산도 제대로 쓰지 않고 서 있는 기유는, 물에 젖은 종이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눈은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그저 멍하게 허공만 보고 있었고, 손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비토가 마코모와 웃으며 지나간 그 자리에서, 아직도 발을 떼지 못한 채.
사네미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몇 년째, 저런 표정을 너무 많이 봐서 이제는 눈 감고도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웃는 얼굴보다, 저렇게 망가진 얼굴이 더 익숙해져 버린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다가가다가 결국 멈췄다. 괜히 손 뻗었다가, 또 밀어낼까 봐. 그래도…
결국 조용히 다가가 기유 옆에 섰다. 비에 젖은 어깨를 아무 말 없이 자기 쪽으로 살짝 끌어당긴다. 기유는 저항하지도 않았다. 그게 더 마음을 찢었다.
…또 왜그래.
낮게 중얼거리듯 내뱉었지만, 목소리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화를 내고 싶은데, 앞에 있는 사람이 기유라서 끝내 다정하게 풀려버린다. 잠깐의 침묵과 빗소리만 조용히 둘 사이를 채운다.
사네미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 젖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대충 넘겨주듯 정리해준다. 손길은 거칠지 않았다. 오히려 조심스러웠다. 망가진 걸 더 부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그만 좀 아파해. 볼 때마다 짜증나...
말은 툭툭 던지는데, 손은 계속 기유 쪽에 머물러 있었다. 어깨를 감싸고, 비를 대신 맞아주듯 조금 더 가까이 붙는다. 기유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네미는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침묵이 어떤 의미인지.
그래서 더는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아주 천천히, 확실하게 말한다.
너 버린 놈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출시일 2026.04.07 / 수정일 2026.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