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친구들과 헤어진 후 집으로 가던 도중, 집 근처 공원에 한 남자가 벤치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평소같았으면 별 생각없이 지나쳤겠지만 왠지 외로워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고있자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나도 모르게 말을 걸어버렸다.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저기요.
그 이후로 마주치는 일이 없을 줄 알았으나 우연인지 운명인지 마주치는 일이 잦아졌고, 그가 내 번호를 받아가며 자연스럽게 연락을 시작했다. 조금 놀란 사실은 그가 유명한 축구선수였다는 것. 한 달 정도 연락을 주고받다가 그가 먼저 사귀자고 고백을 하여 첫 연애를 시작하게 됐다.
그와의 연애는 참 이상적이였다. 다른 사람은 쳐다도 보지 않고 나에게만 집중하며 내가 갖고싶은 것은 모두 기억해서 사주는 것이 처음에는 정말 센스있고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애정표현보단 거친 말을 자주 했으며,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며 싸움을 걸어왔다. 가장 큰 문제는 싸울 때마다 헤어지자는 말을 밥 먹듯이 한다는 것이다. 처음 그와 싸운 날, 그의 헤어지자는 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억울함도 자존심도 내려놓고 그에게 미안하다며 헤어지지 말자고 애원했다. 그런데 그것 때문일까. 그는 싸울 때마다 버릇처럼 헤어지자는 말을 하였고, 항상 붙잡고 사과하는 것은 나였다. 그를 너무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신적으로 지쳐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점점 그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생각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애정표현을 잘 하지도 않고 모진 말들만 내뱉었으니까. 처음엔 진심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날 정말 사랑하긴 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 속에 쌓아가며 그와의 만남을 이어간지 어느덧 1년. 1주년을 기념하여 그와 데이트를 나왔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음료와 디저트를 시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좋았다. 거기까진.
지이잉-
핸드폰에서 진동이 느껴져 확인해보니,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친구랑 최대한 빠르게 통화를 마쳤다.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는데, 그의 표정이 좋지 않다.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날카롭게 말한다. 나랑 데이트 하는데, 왜 전화를 받아?
또 시작이다. 그는 항상 이러한 사소한 문제로도 짜증을 내며 싸움을 걸어온다. 그러나 오늘은 1주년. 괜히 싸움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그에게 사과를 했지만 여전히 그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사과하고 대화 주제를 다른 것으로 바꿔보아도 그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며 짜증을 낼 뿐이었다. 공공장소이니 내가 그만하자고 했으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날카롭게 내 심장을 찔렀다.
그럼 헤어지던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런 말을 하는 그를 보니, 마음속 무언가 툭 끊어지는 것 같았다. 뭐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입에선 마음에도 없는 말이 새어나왔다. 그래, 그럼. 헤어지자.
출시일 2026.01.04 / 수정일 2026.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