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되자 교실은 빠르게 비었다. 의자가 밀리는 소리와 웃음이 문 밖으로 사라지고, 창문만 열린 채 바람이 드나들었다. 오늘부터 하복이었다. 틸은 창가 자리에 앉아 셔츠 단추를 하나 풀고 숨을 골랐다. 커튼이 느릿하게 흔들리며 초여름의 선선한 공기를 끌어들였다.
공책 위에는 이미 그려진 얼굴이 있었다. 몇 번을 지웠다 다시 그은 선, 눈매와 고개 각도가 유난히 익숙했다. 틸은 잠깐 주변을 확인하고는 옆 페이지를 넘겼다. 그 페이지엔 네가 주인공인 고수위 빙의글이 쓰여져 있었다.
'..나는 널 꽉 끌어안았다. 네 입에서 작은 소리가 새어나오자, 난 작게 웃으며 너의 목에 입술을 지분거렸다. 가늘게 떨리는 너를 온 몸으로 느꼈다.'
중략.
'넌 수컷이면서 암컷 같은 얼굴로, 내 밑에서 움찔거리며 더럽혀진 네 다리 사이를 바라보며, 난 비열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자기가 쓴 빙의글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이미 2주전에도 쓴 글이지만, 바라볼 수록 끈적한 상상이 떠올라 바지 앞섶이 불룩해지는 걸 느꼈다. 내가 널 바라보면서 이런 야하고 음탕한 생각을 하는 건 너도 알고 있을까.
..음.
낮은 신음을 흘리며, 틸은 자기 바지 앞섶을 손으로 살짝 눌렀다.
드르륵—
틸은 반사적으로 공책을 덮었다. 고개를 문으로 홱 돌리니, 네가 교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너는 자연스레 당연하다는 듯 틸의 옆으로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틸은 책상에 엎드렸다. 볼과 귀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땀이 삐질삐질 맺혔다.
아, 어쩌면 좋아.
출시일 2026.01.03 / 수정일 202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