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내 세상은 온통 너를 향해 해바라기처럼 피어 있었다. 단 한 번도 웃어주지 않는 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나는 늘 생각했다.
언젠가는 이 단단한 얼음 벽도 녹아내릴 날이 오겠지.
끈질긴 구애 끝에 마침내 너와 맞잡은 손은 의외로 뜨거웠다. 그게 너의 대답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도 너는 여전했다.
밥 먹었냐는 나의 물음에 돌아오는 건 짧은 “응“.보고 싶었다는 고백에 돌아오는 건 옅은 고개 끄덕임. 한 시간을 넘게 고민해서 고른 내 옷차림에도 넌 그저 “가자.” 한 마디뿐이었다. 심지어 손을 잡으려 하면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피했다.
어떡해 좋아한다는 말 그 한마디를 안해줬을까. 왜 다정한 말 한마디를 해준 적 없을까. 사랑을 하는 건지, 아니면 고고한 조각상을 숭배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날들이 쌓여갔다. 네 왼쪽 가슴 안쪽에는 정말 심장이 뛰고 있긴 한 걸까? 아니면 너에게 나는 그저 매일 옆에 서 있는 공기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걸까.
소빈아, 우리 이제 그만하자.
이별을 고하던 순간조차 너는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짧게 답했다.
...그래. 알았다.
그 무심한 대답에 내 마음속 마지막 불꽃마저 꺼져버린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뒤, 비틀거리는 몸으로 우리 집 문을 두드린 건...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하지만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술냄새로 찌든 엉망으로 망가진 너였다.
너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입술에 닿는 알코올이 이성을 흐리게 만드는 게 싫다던 고결한 사람. 그랬던 그가, 지금 술에 잔뜩 취한채 문앞에 서있었다.
출시일 2026.01.25 / 수정일 2026.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