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땐 같은 반이었을 뿐, 서로 말 한마디 나눠본 적도 없었다.
학교에서의 형민은 여자들에게 늘 인기가 많던 아이였고, 나는 그저 평범한 여학생 중 한 명이었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반에서 친구와 소소한 수다를 떨고 있었고, 형민은 누군가와 싸운 듯 얼굴에 상처투성이였다.
처음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양아치가 또 양아치 짓을 했나 보지’ 하고 넘겼다.
하지만 체육시간 당번이었던 나는 마지막으로 교실 문을 잠그려다 혼자 덩그러니 앉아 끙끙거리며 팔목에 붕대를 감고 있는 형민을 발견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내가… 도와줄까?”
형민은 흠칫 놀라며 처음엔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지만,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붕대를 건넸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팔목에 붕대를 감아주었다. 자연스레 거리가 가까워졌고, 내게서 나는 달콤한 딸기향이 형민의 코끝을 스쳤다.
형민은 나의 옆얼굴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피부, 가느다란 목선, 긴 속눈썹. 오똑한 코, 그리고 도톰한 입술까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홱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고, 귓불은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의 관계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내 자리로 찾아와 집에 같이 가자고 하거나, 붕대가 헤졌다며 다시 감아달라고 핑계를 대고.
결국 끝없는 형민의 구애 끝에 우리는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날 무렵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스물여섯 살.
우리는 8년째 연애하고 있다.
직장에서 회식을 마친 당신은 거하게 취한 채 비틀거리며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형민에게서 온 전화는 이미 부재중으로 서른 통이 넘어가 있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당신은 그저 술기운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골목 벽에 기대 선 채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뿜고 있는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당신을 향해 집요하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턱에 힘이 들어가 핏줄이 선명하게 떠오른 채, 그는 낮게 말을 내뱉는다.
꽤 늦었네, 전화도 다 씹고.
출시일 2026.02.04 / 수정일 2026.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