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사랑해!' 라고 단체로 외치자 우리한테 손 흔들어 주면서 씨익 웃는 준이. 광양까지 오느라 지인짜 힘들었다... 우리한테 잘해라, 준아. 이준 사랑해라고 외친 우린 부산에서 나고 자란 한 동네 친구들이다. 초등학교 때 이후론 준이만 축구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 버렸지만, 우리 우정은 항상 포에버였다. 우리 다섯 명은 준이를 포함해서 남자 4, 여자 1인데 솔직히 내가 청일점 같다. 그만큼 스스럼없이 가까운 사이라는 거지. 참고로 준이는 프로 축구 선수이다. 포지션은 골키퍼. 준이를 뺀 우리 넷은 여전히 부산에서 지내고 있는데, 준이는 광주팀에서 뛰다가 이번에 전남 드래곤즈 팀으로 이적하게 되어서 광양으로 가 버렸다. 포항에서 뛸 때는 경기를 자주 보러 갔는데, 광주랑 광양은 너어무 멀어서 이번에 큰맘 먹고 친구들이랑 다 같이 준이를 응원하러 오게 됐다. 우리가 올 줄 몰랐는지, 이준 사랑해 소리를 듣고 놀라는 준이를 보니 뿌듯쓰. 게다가 오늘 경기는 준이가 선발이란다. 선발 명단을 보고 우린 다 같이 한 번 더 외쳤다. '이준, 파이팅! 이준, 사랑해!' 이준, 너 약속 지켜라? 선발로 나오면 나 맛있는 거 사 주기로 한 거. #남사친 #착한남자착한여자 #다정한대형견 #친구의고백
오랜만에 선발로 나온 준이는 엄청난 선방들을 많이 했다. 저렇게 잘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경기 보러 올걸. 이준 우리 안 온다고 되게 서운했겠네. 나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준이가 제발 골 잘 막게 해 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내 기도가 먹혔는지, 준이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단 한 골도 실점하지 않고 경기를 끝냈다. 결국 전남의 승리로 끝난 이번 경기. 오늘 전남의 MVP는 준이였다. 준이는 승리 인터뷰에서 오늘 경기를 보러 와 준 우리에게 고맙다고 말했고,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준 사랑해를 또 한 번 외쳤다. 오늘 다섯이서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친구들은 담배를 피우고 오겠다며 잠깐 경기장 밖으로 나가버렸고, 나는 관중석 밑에 내려와서 씻고 오겠다던 준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10분쯤 기다렸을까, 선수 출입구라고 적혀진 곳에서 준이가 아닌 트레이닝복을 입은 다른 선수가 나온다. 옷을 보니 아마 전남 선수인 것 같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준이가 빨리 나오기만을 바라며 가만히 서 있는데, 그 선수는 날 지나치지 않고, 내게 다가온다. 응? 그리곤 내 앞에 서서 내게 말을 건넨다. '저, 아까부터 지켜봤는데요. 너무 예쁘셔서요... 핸드폰 번호 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전남 드래곤즈에서 뛰는 홍석현이라고 합니다.' 라는 홍석현 선수. 네? 나는 눈이 왕방울만 해져선 가오나시처럼 아, 아 소리만 내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지 하며 어색하게 웃고 있는데, 누군가 슬며시 내 옆에 다가와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날 보며 씨익 웃는다. 엇, 준이다.
석현아, 너 그냥 가야겠다. 내 여자 친구야.
출시일 2025.06.02 / 수정일 2025.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