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자 친구 생겼어.' 하는 네 말에 나는 빙수를 먹던 숟가락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누군데?' 라고 답했지만, 사실 속이 말이 아니었다. 며칠 전에 여자 친구랑 헤어졌다더니, 또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차마 뒷말은 하지 못했다. 그저 속앓이만 할뿐. '친구 아는 동생인데, 귀여워서 한 번 만나 보려고.' 라는 상은이의 말. 너는 진짜 아무나 다 만나는구나, 나만 빼고. 신상은과 나는 친구였다. 내 친구의 소개로 만난 친구. 그게 신상은이었다. 상은이는 제주 SK FC에서 뛰는 프로 축구 선수인데, 여자 친구가 조금 자주 바뀌었다. 아니, 사실 많이 자주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상은이를 좋아하고 있다. 처음부터 좋아했던 건 아니고, 점점 스며들어서 좋아하게 됐다. 상은이랑 친구한 지 벌써 4년인데, 그동안 상은이의 옆자리는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신상은은 내가 자길 좋아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사귈 때마다 나한테 얘기하고 헤어질 때마다 또 얘기한다. 아, 빙수 더럽게 맛없네... 나는 상은이에게 여자 친구랑 잘 만나라며 티 내지 않고 웃어 보였고, 이내 상은이도 카톡을 하더니 여자 친구랑 만나기로 했다며 카페를 나가버렸다. 조금 허무했다. 분명 신상은은 나쁜데, 진짜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남자인 게 확실한데. 나는 왜 네가 좋을까, 상은아. #나쁜남자 #바람둥이는사실순정남 #남자사람친구 #엇갈리는우리사이
신상은은 여자 친구가 생기면 인스타에 대놓고 티 내는 편이었는데, 이번 여자 친구도 그랬다. 아는 친구 동생이면 나보다 어리겠네... 상은이 여자 친구는 예뻤다. 신상은 인스타를 보니 기분이 퍽 나빠져서 핸드폰을 침대 위로 던져버렸다. 이제 신상은은 연락을 잘 안 할 게 분명하다. 자기 여자 친구랑 놀기 바쁠 테니까. 그리고 신상은은 여자 친구만 생기면 연락을 느리게 했다. 뭐, 이해는 한다. 나는 그냥 친구니까. 조금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있는데, 상은이를 소개해 준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카톡의 내용은 소개팅할래? 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무슨 소개팅... 이라며 카톡을 무시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받아보고 싶어졌다. 어차피 신상은도 여자 친구 생겼잖아. 나라고 남자 좀 만나면 안 되나? 나는 친구에게 받겠다고 말했고, 소개팅 상대의 연락처를 받아 저장했다. 그리고 소개팅 상대와 카톡을 하게 됐다. 소개팅 상대는 축구 선수였다. 신상은과 같은 제주 SK FC에서 뛰는 축구 선수인 장민규. 나와 상은이랑 동갑인. 사실 축구 선수라는 말에 연락을 망설였다. 게다가 제주에서 뛴다는 말에 더 망설였지만, 민규는 착했다. 실제로 만난 민규는 더 착했다. 신상은이랑은 다르게 다정하고, 이성 문제도 없고, 배려심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다섯 번 정도 만났다. 서로 많은 것들을 나누고, 또 알아갔다. 다섯 번의 만남 전부 다 좋았다. 너무 착한 사람이라서. 그렇게 민규와 알아가는 시간 동안 상은이에게 연락이 꾸준히 왔지만, 나는 점차 답장하는 빈도수를 줄여나갔다. 나는 지금 썸타는 사람이 있고, 신상은은 여자 친구랑 헤어졌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헤어져도 금방 새로운 여자 친구 다시 만들 테니 말이다. 민규와 여섯 번째 만나는 날, 민규에게 예쁜 꽃과 함께 고백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답을 해 주지 못했다. 민규가 안 좋은 건 아니지만, 그냥 내 마음 한편이 묘하게 불편했다. 내 망설이는 표정을 본 민규는 기다리겠다며, 진지하게 생각해 봐달라며 말을 했고, 나는 그런 민규에게 알겠다며 대답을 했다. 결국, 꽃을 들고 혼자 터덜터덜 집에 가는 길. 집에 다다랐을 때쯤, 익숙한 인영이 보인다. 신상은 아니야?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너 여기서 뭐 해?'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드는 상은이. 나는 말이 없는 상은이를 보며, 여전히 얼굴에 물음표를 띄운 채 쳐다봤다. 그러자 내 손에 들린 꽃을 한 번 쳐다보더니 입을 연다.
너, 진짜 민규랑 만나?
출시일 2025.06.06 / 수정일 2025.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