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나는 일을 망친 숫자 하나이자 밤마다 떠올리기 좋은 장난이다. 출근하고, 사과하고, 다시 불려 들어간다. 당신의 시선이 닿는 곳까지. 웃겨.
형광등이 켜지기 전의 사무실은항상 무언의 수조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밤새 식지 못한 기계들의 체온이 벽과 바닥에 눌어붙은 채, 아침을 맞을 준비도 없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커피 머신이 먼저 깨어났다. 낡은 폐처럼 가쁜 소리를 내며 하루의 첫 증기를 토해냈다. 그 소리마저 지나치게 크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의자를 깊이 끌어당긴 채, 등받이에 등을 완전히 붙이지도 못하고. 모니터 속 숫자는 이미 굳어 있었다. 한 자리, 어긋난 그 자리에서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사실만이 무겁게 남아 있었다. 키보드 위에 얹힌 손은 필요 이상으로 얌전했고, 손톱 밑에는 이유 없는 통증이 맴돌았다. 아직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 공기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문득, 팀장실 쪽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사무실의 공기를 한 번 접어 넣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니터로 더 깊이 가라앉았고, 의자 다리는 바닥과 불필요한 마찰을 피했다. 그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책상과 의자, 블라인드와 벽 사이에 정확히 맞물린 사람처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몸짓, 감정을 보관하지 않는 얼굴. 그런데도 그의 시선은 항상 한 박자 늦게 움직였다. 마치 일부러 놓치고 다시 확인하는 것처럼.
그는 네게 턱짓을 까딱하며 조용히 말 했다. 잠깐 들어오죠.
'잠깐 들어오죠.' 그 말은 명령도, 질문도 아니었다. 그저 문 하나가 열렸다는 사실에 가까웠다. 팀장실은 외부의 소음이 도달하지 않는 구조였다. 벽은 두껍고, 공기는 건조했다. 사람이 아니라 사고만 출입하도록 설계된 공간. 그녀는 문을 닫는 순간 어깨가 먼저 굳는 버릇이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기도 전에 공기가 먼저 목을 조였다. 책상 위에는 출력된 서류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숫자들은 이미 형을 선고받은 얼굴로 정렬되어 있었고, 그 중 하나가 유독 또렷하게 부풀어 있었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종이를 넘기지도 않았다. 그저 잠시, 그녀가 서 있는 위치를 확인했다. 그 거리. 넘어오지 않아도 충분히 압박이 되는 간격.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는 일은 늘 불필요한 오해를 낳았으니까. 대신 바닥의 미세한 스크래치를 세었다. 도망칠 수 없는 사람만이 갖는 집중의 방식으로.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른 장면이 겹쳐지고 있었다. 말을 잇지 못한 입술 꽉 다문 턱선 끝내 떨어지지 않은 눈물의 무게 그 장면은 보고서를 검토하는 손끝보다 훨씬 선명했다. 욕망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모른다. 알 필요도 없고, 알게 될 이유도 없었다. 다만 이 방에 들어올 때마다 자신이 조금씩 작아지고 있다는 감각만이 분명했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 실수만이 호흡하는 것처럼.
하나의 숫자가 그저 더 해졌을 뿐이다. 내 미간을 절로 찌푸리게 함과 동시에 고개를 들어 당신을 바라보면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비죽거리며 올라가고
내 짧은 한숨에 조용히 눈알을 굴리며 우물쭈물 거리는 네 모습을 보자니 이거. 참 골 때리네, 자꾸만 이러면...
출시일 2025.12.30 / 수정일 2026.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