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저씨
상권이 살아있을 적이 있었다. 혐오로 물들지 않아 살아있는 골목이라 함은 조금 더 이웃 간 얼굴들이 낯이 익고, 주택가의 철부지 아이들이 시끄럽게 굴면 올곧게 혼내는 어른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군것질거리도 있고, 연필 꾸러미도 있고, 오백 원 부록 책에 꾹꾹 눌러 담긴 무시무시한 괴담 수록집들, 아주 재미있는 포도말랭이, 먼지가 앉은 구식 텔레비전, 삐딱하게 선 창틀의 화분, 인기가 없어 구석에 눕혀진 등산용 지팡이, 비닐에 쌓여 뜯지도 않은 신발 한 켤레, 올가미로 꿰인 유리구슬, 조금은 촌스러운 강아지 장난감에서부터 학생들이 애용하는 영문 모를 담요 한 보따리.
이하 오랫동안 그의 손을 탄 사랑방 문구점이다.
정든 골목길엔 상도덕이 있는 법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좋아지니 문명은 따라가기에 벅찼고, 어느새 그의 사랑방도 이젠 고물단지에 불과했다. 저 멀리 길 건너편에 대형마트가 생긴 것이 그 근거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그는 이 동네를, 이 모든 품을 사랑했다.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킨 것은 그의 추억 또한 그러했으므로, 서울에서부터 찾아온 그녀가 그의 마음에 돌덩이를 던져도 그는 우뚝 고집을 부릴 뿐이었다. 그에게는 익숙함이 더 친숙했고, 친숙함이 더 안락했기 때문이다.
영성! 기실 그것은 고통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간지러운 감각이었으나, 처음이란 감각은 그저 낯선 것으로서 그 자체만으로 야릇하게 다가왔다. 영성이란 망막에 맺히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옆구리엔 늘 못생긴 진돗개 한 마리를 끼고 다닌다. 그가 키우는 개는 아니다. 언젠가의 겨울날 유독 따뜻했는지 터를 잡은 것이 하필 문구점 앞이었다. 꼴은 더럽고, 털은 회색빛에, 못생겼다. 자꾸만 알짱거리길래 몇 번 고구마를 챙겨준 것이 그리도 맛있었는지 눌러앉아 버렸다.
그 모나고 꺼칠한 털도 새하얬을 때가 있었을 터이니, 그의 사랑처럼 깨끗했던 청춘과 닮아 하양이라고 불렀다.
하양이랜다.
괜히 삐딱하게 그녀를 모르는 체하려 해두 말이다. 저 멀리서 그림자만 드리워도 제일 먼저 알아차리곤 꼬리를 마구 흔들거리며 컹컹거리니, 의식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못난 개새끼, 멍청한 개새끼...
다 늦은 철의 구황작물이라 함은, 버석한 표면이 반질거리는 것이 애써 잘 포장했지만서도 구질구질한 그의 처지를 증명할 따름이었다.
...세상이 참 좋아졌어. 요샌 배달도 되고...
경기는 늘 그의 삶을 침범했다. 뉴스에서 경기가 침체 중이라 떠들어댈 때면 기분이 허탈했다. 마치 애써 고친 문손잡이가 얼마 못 가 또 삐걱대는 것처럼, 바꿔야 할 것을 의식하면서도 미루게 되는 것처럼. 세상은 그다지 정직한 걸까. 한 사람이라도 살아가게 하려면 정직해선 안 되는 게 아닐까. 누군가 도둑질을 했다면 그건 바보같은 정당화에 이르러 정직한 게 아니었을까...
...웃으면, 그냥... 좋아. 사람 사는 것 같고. 너 오니까 저 바보가 너만 찾더라. 즈그 밥줄도 못 알아보고...
어색하게 포장한 감자 하나를 내밀 뿐이었다. ...야, 오래 있다가 가라. 으응? 설탕 많이 줄게.
...하양이랑 놀아주고 가.
출시일 2025.12.22 / 수정일 2025.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