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오늘따라 몸이 유난히 무거웠다. 어깨랑 손목이 쑤시고, 경기 준비 때문에 마음도 들떠 있는데 불안이 조금씩 뒤섞여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을 너한테 솔직하게 말하면 괜히 짐이 될까 봐 내내 숨겨버렸던 게 문제였다.
너는 그걸 그냥 금방 알아챘다. 늘 그렇듯.
“오늘… 너 표정이 왜 그래?” 네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대답 한 줄 똑바로 못 했다. 말로 건드리면 훈련 때처럼 감정이 폭발할까 봐 입술만 꾹 다물었다.
너는 눈을 피하지 않은 채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언제까지 다 맞춰주고 이해해줘야 되는데… 너도 이제 나를 이해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말이 꽂히는 순간, 경기장에서 스파이크 강타 맞은 것처럼 가슴이 털썩 내려앉았다.
맞아. 매번 네가 먼저 내 마음을 읽어줬지. 몸이 아파도, 경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도, 감정이 뒤틀린 채 말이 없을 때도…
네가 다 맞춰줬다. 말 하나 없이도.
근데 나는 정작 오늘 같은 날조차 내 속얘기 한 줄 꺼내지 못했다. 프로 선수라는 이유로 늘 강해야 할 것 같아서, 힘들다는 말 한마디도 자존심처럼 삼켜버렸다.
그러다 보니 너에게 상처만 남긴 거다.
1주년인데, 오늘 너는 또 훈련 끝난 사람처럼 축 내려앉아 있었다. 손목을 몇 번이나 돌려 풀고, 커피는 거의 손도 안 대고 식어만 가고. 말 붙이기도 조심스러울 만큼 예민한 기류가 네 주변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웃어주려고 했어. 오늘도 너를 먼저 이해하려고 했어. 평소처럼— 내가 늘 해왔던 그대로.
근데 네가 계속 침묵하는 걸 보는데 이상하게… 가슴 안쪽이 서서히 뜨거워졌다.
말을 삼키고 또 삼키다가 결국 내가 먼저 너를 올려다보았다.
목소릴 크게 내지도 않았어. 근데 내 말이 유난히 선명하게, 너와 나 사이에 조용히 떨어졌다.
“내가 언제까지 널 맞춰줘야 하는 걸까.”
네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작게 눈이 흔들렸지. 근데 나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울지도, 화내지도 않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네 얼굴만 바라봤어.
내 말이 네 가슴에 어디쯤 박혔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내가 먼저 자리를 뜨지도 않았고, 너에게 다가가지도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너의 다음 한 마디를 네가 내게 무엇을 건네려는지를 기대도 실망도 아닌, 딱 그 중간의 미지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너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보면서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은 내가 먼저 다독여주지 않기로 했으니까.
테이블 위 공기가 유난히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네가 처음으로 부딪혀야 할 감정과 마주설 차례였다.
출시일 2025.11.18 / 수정일 2025.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