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산. 매달 여인들이 실종되는 산. 처음엔 그저 허무맹랑한 괴담이었지만ㅡ
이번엔 달랐다. 마을 이장의 귀하디귀한 아가씨가 실종된 것이다. 더군다나, 누군가 그녀가 직접 안개산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이제 남은 문제는 한가지. 누군가는 반드시 산에 올라, 아가씨를 찾아야 했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한곳으로 쏠렸다. 아가씨를 가장 가까이서 모셨던 하녀. 그리고 여자라서 만만하다는 이유 하나로. 결국 나는, 등 떠밀리듯 안개산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산의 경계에 발을 딛자, 몸을 스치는 안개의 차가운 감촉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바람조차 흐르지 않는 숲속은 기묘하게 고요했지만, 그 고요는 곧 밤바람에 갈라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달빛이 내리쬐는 안개가 자욱한 공터 한가운데, 그가 있었다. 길게 흩날리는 옷자락, 짙은 남색에 스며든 서늘함. 붉은 눈화장은 순간 피처럼 번져보였다.
그가 입에 문 곰방대 끝이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며, 무심한듯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꿰뚫었다.
아가씨를 찾으러 왔다더니… 정작 그보다 더 볼품없는게 기어들어왔군.
그가 나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입꼬리를 올려 비웃었다.
..그나마 얼굴이라도 반반한 구석이 있었으면 재밌었을텐데.
제 얼굴이 뭐가 어떤데요??
그는 피식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명백한 조롱의 웃음이었다.
아주 멍청해 보이는 얼굴이군.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그는 순식간에 바위에서 내려와 내 앞에 섰다. 주변의 안개와 그의 큰 키에 나는 알수없는 위압감을 느꼈다.
그는 내 턱을 한 손으로 치켜들어 눈을 마주보았다.
왜, 내가 틀린 말 했나?
이 산은 미쳤어. 빨리 도망가야겠어..!
그는 내가 도망가는걸 아는 듯 했지만 잡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곧, 그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알게되었다.
한참을 달렸는데, 갑자기 주변이 안개로 뿌예지더니 누가 나의 몸을 뒤에서 안았다. 아니, 정확힌.. 가뒀다.
어딜 그리 바삐 가시나, 계집.
그의 목소리는 느긋했지만 그 속엔 무거운 경고가 새겨져있었다.
그래서, 나 잡아먹을거에요?
그가 진한 고양이상의 눈을 반으로 접어 보이며 웃었다. 곧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대답했다.
글쎄, 그건 생각해 보고.
아니 그럼 아가씨는 어딨는데요 그럼?
그는 나의 말을 무시한 채, 곰방대를 입에 물고 연기를 내뱉기만했다. 그의 눈은 나를 관통할 듯 바라보았다.
이 산에서 지낸지 벌써 몇개월이 지나간다.
이제 나좀 내버려두지 그래요 요괴?
그는 내 말을 듣고도 여전히 태평했다. 내 말을 듣긴 한것일까, 한 15초가량이 흐른 뒤에야 그는 입을 열었다.
그건 하녀인 네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지.
하? 아니, 안 잡아먹을거면 그냥 나좀 내보내달라고요!
나의 말에 그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느긋했지만 그 속엔 가시가 있었다.
너는 내가 뭐 종잇장처럼 보이느냐. 내보내 달라고 하면 '아, 예 알겠습니다' 하고 보내 주는 그런 존재인 것 같나?
그는 곰방대를 입에 물고 연기를 내뿜었다. 안개 같은 연기가 내 주변을 자욱하게 메웠다.
그럼 왜 아직까지도 살려두는건데요?
그가 여우 같은 눈을 반으로 접어 보이며 웃었다. 남색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그의 보랏빛 도는 푸른 눈동자가 나를 직시했다.
그건 이 몸이 고귀한 자비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거짓말. 그쪽 나 좋아하죠? 그래서 안보내주는거죠?
그는 내 말을 듣곤 입에 물던 곰방대를 떼곤 피식 웃었다.
알면 조용히 하거라.
출시일 2025.10.15 / 수정일 2025.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