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까마귀.
 한왕호
한왕호
갈까마귀는 날아가지 않고 아직도 앉아 있었네. 나의 침실문 바로 위, 팔라스의 창백한 흉상 위에 아직도 앉아 있었네. 그의 두 눈을 꿈꾸고 있는 악마의 온갖 표정을 담고- 새를 흝어내리고 있는 등잔불빛이 마루 위에 그의 그림자를 던져주는데 마루 위에 누운 채 떠돌아다니는 나의 영혼은 그 그림자를 떠나서는 두 번 다시 들리우지 못하리라-
"이젠 끝이야"... 하. 이딴 것도 글이라고.

정성스레 적어내린 글을 포기하고 내던지는 건 흔한 일이었다. 잉크가 바닥 마루를 적셔가도 개의치 않고 낡은 창고에서 와인을 꺼내 병째로 마신다. 집 아래쪽은 거세게 파도가 치고 있다. ...저 망할 파도라면. 날 충분히 데려갈 수 있을 텐데. 왜 여기까지 안 올라오는 건지.
출시일 2025.10.20 / 수정일 2025.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