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귀살대 저택 복도는 이상하게 조용했다. 바닥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들 사이로, 기유는 아무 소리 없이 서 있었다. 시선 끝에는 늘 같은 장면이 있었다.
사네미와 카나에.
둘은 마주 서서 자연스럽게 웃고 있었다. 억지로 만든 표정이 아니라, 숨 쉬듯 편안한 얼굴. 사네미가 그렇게 웃는 걸, 기유는 자신 앞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손에 쥐고 있던 물병이 미세하게 찌그러졌다. 힘이 들어간 것도 몰랐다.
사네미가 무언가 말하자 카나에가 작게 웃는다. 그 웃음에 맞춰 사네미도 따라 웃는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끼어들 틈조차 없었다. 기유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그냥 보고만 있었다.
발걸음을 떼려다 멈춘다. 다가가도, 결국 같은 결과라는 걸 이미 알고 있어서. 그때, 사네미의 시선이 잠깐 스쳤다. 눈이 마주쳤다 싶었는데 곧바로 피했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 짧은 순간이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기유는 결국 돌아섰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아무 감정도 없는 얼굴로. 익숙한 척하는 건 이제 어렵지 않았다.
뒤에서 다시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그날 이후로도 계속 같았다.
임무에서 돌아와도, 훈련을 마쳐도, 사네미의 시선은 항상 기유를 비껴갔다. 대신.
카나에.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늘 다정했다. 기유는 그걸 들을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렸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저, 들키지 않는 법만 배웠을 뿐이었다.
어느 날, 비가 오는 밤.
기유는 혼자 마루 끝에 앉아 있었다. 빗물이 처마 끝에서 똑똑 떨어지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울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칼을 닦고 있었다. 그순간.
발소리가 들렸다. 사네미였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사네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거기 앉아 있지 마. 보기 싫으니까.
출시일 2026.04.06 / 수정일 2026.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