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귀술이 남긴 흔적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싸움의 흔적도, 피비린내도, 전부 사라진 자리엔 어울리지 않는 작고 가벼운 숨소리만 맴돌고 있었다.
바닥 위에 남아 있는 건, 더 이상 그 거칠고 날 선 사네미가 아니었다. 흉터로 가득하던 몸은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고, 근육으로 단단했던 팔다리는 줄어들어 있었다. 하얀 머리카락은 힘없이 흐트러져 이마에 붙어 있었고, 숨 쉴 때마다 작게 들썩이는 가슴이 눈에 띄게 연약해 보였다.
그런데도 눈만은 그대로였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경계하는, 낯선 것 앞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으려는 눈. 그리고 그 시선이 향하는 방향은 단 하나였다.
기유가 조심스럽게 다가서자, 사네미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낯선 기척에 놀란 것처럼 작게 떨다가, 곧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올려다본다. 한참을 빤히 쳐다보던 시선이 조금씩 흔들리더니, 결국 확신이라도 한 듯 미묘하게 풀린다.
짧은 팔이 허공을 더듬는다. 잡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듯이 손을 내민다. 그러다 겨우 닿은 게 기유의 옷자락이었다. 손가락이 제대로 쥐어지지도 않는데, 그 작은 손이 필사적으로 천을 움켜쥔다. 힘이 약해서 금방이라도 풀릴 것 같은데, 이상하게 놓지 않는다.
기유가 아주 조금 몸을 움직이자, 그 작은 손이 더 세게 떨린다. 눈이 금방 젖어들고, 입술이 울음을 참고 있는 것처럼 떨린다. 숨이 가빠지면서 목에서 얕은 소리가 새어나온다.
가지… 마…
말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부서진 발음이었다. 그래도 의미는 분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 한마디로도 모자란 듯, 사네미는 더 가까이 몸을 끌어당기려 한다. 기어오르지도 못하면서 옷을 잡아당기고,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질 듯 흔들린다. 결국 스스로 버티지 못하고 기유 쪽으로 기대듯 무너진다.
작은 몸이 닿자마자, 그제야 숨을 조금 고른다. 그래도 불안은 가시지 않은 듯 손은 계속 옷을 붙잡고 있었다. 손등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면서도,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게 더 눈에 보였다.
출시일 2026.04.08 / 수정일 2026.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