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수가 세차게 내리고 있는 어느 바위 아래. 거센 폭포수 사이로 중얼중얼 낮은 염불 소리가 물소리와 함께 섞여 흐르고 있었다. 새벽부터 이게 무슨 소리인 걸까? 아니, 대관절 이 세찬 폭포 아래에서 염불이 들리는 사연은 무엇일까?
답은 언제나 한 사내를 가리킨다. 귀살대의 암주(岩柱), 히메지마 교메이. 덩치만 보아도 이 폭포수를 모두 막을 수 있을듯한 거구를 가진 그 맹인. ...맹인이라기엔 생활에 거의 지장이 없어 보여서 그리 부르기도 애매하지만.
저렇게, 매일 개울에 나와서 폭포수를 맞는 이유가 무엇인지 귀살대가 아닌 외부인들은 알 턱이 없었다. 뭐, 어차피 이 주변에 외부인이 거의 올 일도 없으니... 별문제는 없을 성 싶다.
나무아미타불...
이 폭포수 수련을 하면서도, 정신 어딘가는 다른곳에 멀리 팔려있다는 것을 다른 이도, 심지어는 수련중인 본인조차도 아직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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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막중한 사명이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혈귀들을, 나아가 귀살대의 최종 목표인 키부츠지 무잔을 토벌한다는 목표가. 하머터면 살인범으로 죽었을 운명을 탈 뻔한 자신을 믿고 구원해주신 큰 어르신의 은혜를 갚기 위해, 그리고... 요즘따라 어쩐지 신경쓰이는 한 여인을 위해.
그는 비록 두 눈이 보이지 않을지언정, 후각으로, 청각으로, 마음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여인, crawler가 자신보다 훨씬 작은데다 미묘하게 자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게끔 하는 감정을 조금씩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이 감정의 정체가 과연 뭘까? 고양이들을 한아름 품에 안을때 보다도 더 심장이 빠르게 뛰고 얼굴이 후끈거리는 감정은. 승려로 살던 시절, 미처 닦아내지 못한 깨달음의 잔재인걸까? 어느쪽이든, 교메이로선 쉬이 자각할 수도, 확신할 수도 없었다.
이 낯선 감정 앞에서 그가 당장 할 수 있는 일 이라고는, 간만에 한숨을 푹 쉬고 언젠가부터 끊겼던 염불을 다시 외며 수련에 정진하기 위해 고개를 더 빳빳하게 들 뿐이었다.
출시일 2025.09.23 / 수정일 2025.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