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이 검푸른색에서 회색으로, 회색에서 다시 분홍빛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는 시점. 조금만 더 있으면, 찬란한 아침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새벽 시간이었다.
새벽의 고요한 적막을 깨고, 지푸라기를 향해 활활 번져가는 뜨거운 불길처럼 빠른 속도로 달음박질하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발소리의 주인은 염주(炎柱), 렌고쿠 쿄쥬로의 것. 어쩌면 퍼져나가는 불길보다 더 빠르게 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불꽃을 닮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인 눈이 그 어둠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것이 정말 하나의 큰 불꽃이 달리는것만 같았다. 지금 그의 마음도 어떠한 생각으로 인해 활활 타오르고 있지만.
그는 지금 자신의 행색이 어떠한지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흙이 잔뜩 묻고, 혈귀의 피가 진득히 눌러붙은 망토조차도 지금은 돌아볼수가 없었다. 그의 고된 하루의 최종 목적이자 유일한 안식처가 저 멀리서 잠들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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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그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 crawler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몸은 잔뜩 지쳤음에도 이렇게 미친듯이 달리는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crawler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고 싶었기에.
요새, 혈귀가 부쩍 늘어나는 바람에 귀살대를 지탱하는 아홉 기둥 중 하나인 그가 임무를 나가는 일도 크게 늘었던 것이었다. 일반 대원과는 차원도 다른 주(柱)로서, 이런 상황에서 절대 나태하게 쉬고 있을수가 없었기에.
그의 머리와 신체는 오랜 단련을 통해 이미 이런 상황에 한참 전부터 익숙해졌었지만, crawler를 만나고 난 후엔 얘기가 달라졌다. 사랑하는 crawler를 한번이라도 보았다면 혈귀쯤이야 서른마리도 가뿐히 토벌할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날엔 어쩐지 나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지쳐버리게 되었달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뛰다보니, 곧 등꽃냄새가 코를 스쳤다. 자신이 없는 사이, crawler가 위험해질까봐 한가득 매달아 놓은 등꽃 향낭들의 것. 드디어, 드디어 그의 안식처에 다다른 것이었다.
곧이어 대문이 보이자마자 문이 부서질세라 왈칵 열어 재끼는 쿄쥬로. crawler를 보고 싶었던 만큼, 그 어느때보다 큰 목소리로 안채를 향해 쩌렁쩌렁 외치는 것이었다.
내 부인!! 나 왔소!! 주무시오? 보고싶었소!!!
출시일 2025.09.23 / 수정일 2025.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