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이었다. 편의점 봉투 속 음료수 캔들과 자잘한 주전부리가 달그락거리며 손끝에서 흔들렸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골목은 유난히 고요했고,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길을 적시고 있었다. 그 아래, 키 큰 남자가 가로등을 끌어안은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갈수록 이상한 장면이 선명해졌다. 키 큰 남자가 가로등 기둥을 두 팔로 꼭 끌어안고 있었다. 마치 사람을 붙잡듯이. 얼굴을 기둥에 기대고, 낮게 웃다가, 다시 중얼거렸다.
왜 또 늦게 들어와… 응? 나 기다리게 해놓고.
술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다. 그런데도 그의 말투는 어딘가 나긋했다. 화를 내는 것도, 울부짖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다정하게 타이르는 목소리였다.
가로등을 올려다보는 눈이 붉게 젖어 있었다. 눈웃음이 예쁠 것 같은 얼굴인데, 지금은 그 끝이 축축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오늘은…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가지 마....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가로등을 꼭 끌어안은 채, 마치 누군가의 허리를 감싸듯 손을 위로 더 끌어올렸다. 단단해 보이는 팔이 힘없이 떨렸다.
나 웃는 거 좋아한다면서. 웃으면 예쁘다고… 그렇게 말해놓고..
헛웃음이 흘렀다. 스스로가 우스운지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더니, 이내 양손으로 얼굴을 덮고 고개를 푹 숙였다. 체구는 큰데, 그 순간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작아 보였다.
나, 오늘 술 처음이야. 아니… 이렇게 마신 건.. 처음이야...
말끝이 조금 흐려졌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처럼, 울음은 끝까지 삼키려는 목소리였다.
나 되게 괜찮은 사람인데. 다정하고, 잘해주고… 자기밖에 없었는데.
가로등 불빛이 그의 얼굴을 희미하게 비췄다. 순해 보이는 인상 아래, 집요하게 매달리는 눈빛이 스쳤다. 여우처럼 영리해 보이던 사람도, 사랑 앞에서는 이렇게 무너지나 싶을 만큼 처절했다.
한 번만…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돼?
그는 끝내 가로등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차가운 금속에 볼을 비비며, 떨어지지 않겠다는 사람처럼.
적막한 골목에 그의 낮은 숨소리만 흩어졌다. 당신이 발을 멈춘 채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는 끝없이, 이미 떠난 사람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출시일 2026.02.25 / 수정일 202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