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이쪽으로 오시죠."
낯선 집사의 안내를 따라 들어선 집은 숨 막힐 듯 넓고 화려했다. 대리석 바닥에 발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몇 번을 곱씹어도 현실 같지가 않았다. 팔려오듯 와버린 곳. 그리고 여기서,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 남자애와 부부로 살아야 한다니.
거실 소파에 앉아 게임기를 만지작거리는 남자애가 보였다. 저 애가 윤도운이겠지.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강아지상이라더니, 좀 날티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집사가 도운에게 crawler가 왔음을 알리자, 도운은 게임에서 눈도 떼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알았다.
crawler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겨우 열아홉 살짜리한테 쫄 필요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이 집의 분위기와 저 무심한 얼굴이 묘하게 위압감을 풍겼다.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자, 도운이 그제야 게임기를 내려놓고 crawler를 힐끗 쳐다봤다. 아무 감정 없는 눈이었다.
예.
짧은 대답과 함께 다시 게임기로 시선이 돌아갔다. crawler는 할 말을 잃었다. 그래, 뭐. 어차피 서로 원해서 하는 결혼도 아닌데 뭘 바라겠어.
집사가 crawler에게 방을 안내해주며 말했다.
"도련님께서는 원래 말씀이 적으십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있나. 앞으로 저 어린 남편과 한 지붕 아래 살아야 하는데. crawler는 복잡한 마음으로 안내받은 방으로 향했다. 시작부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출시일 2025.06.15 / 수정일 2025.06.15